기본이념은 東亞 번영-평화…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한국어와 일본어 병행 표기 객관적 사실만 보도하되 자료-해석 다를 땐 둘다 소개 국민감정 안 다치게 배려하고 사설은 양측이 반드시 단일화 아! 이런 신문 만들 수 없을까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나에게 오랫동안 이 칼럼을 쓰도록 해주고 있는 동아일보지만 그는 왜 기상천외한 꿈을 꿨을까. 상상에 빠지면서 16년 전의 일을 떠올리게 됐다.
그건 내가 아사히신문 정치부장이었던 1999년 4월 1일의 일이었다. 정치면에 ‘오부치 총리, 외국인 장관 등용하기로’라는 기사를 실었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총리가 일본의 대개혁을 목표로 결단했다며 후보자로 개혁 실적이 있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등 거물들의 이름을 올렸다.
우리는 다음 날 지면에서 “시끄럽게 했다”며 사실을 밝혔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장난이 지나치다”와 “유머에 감탄했다”가 반반으로 항의와 격려의 전화와 편지가 쏟아졌다. 다행히 오부치 총리는 “이왕이면 좀 더 젊은 사람을 기용하고 싶다”며 유머로 받아주었다.
그런데 국가의 중추를 담당하는 각료는 논외로 하고, 과연 신문사는 편집 간부에 외국인을 등용할 수 있을까. 민간 기업에서는 닛산자동차처럼 외국인을 사장으로 한 예도 있지만 언론을 생명으로 하는 신문사는 사정이 다르다. 특히 한국 신문에 일본인 기용 등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1905년 일본이 강제로 한일 보호조약(을사늑약)을 맺고 외교권을 빼앗았을 때 ‘황성신문’의 장지연 사장은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오늘 목 놓아 통곡하노라)’이라는 논설을 실은 뒤 체포됐고 신문사는 폐쇄당했다.
동아일보는 식민지시대(일제강점기)이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게재해 무기한 발간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런 숱한 역사는 일본에 대한 저항정신이 한국 신문의 뿌리에 있음을 말해준다. 원래 어느 나라에서도 신문은 내셔널리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포츠머스조약을 맺었을 때 그 전과(戰果)가 너무 적다며 ‘대곡(大哭)’한 것은 아사히를 포함한 일본 신문이었다. 그 결과 정부에 항의하는 폭동도 일어났고 이후 한국 병합과 대륙 침공에도 탄력을 붙이게 됐다. 이윽고 일본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신문은 얼마나 잘못을 범했는가.
지금 일본의 일부 미디어가 ‘혐한(嫌韓)’에 물드는 것은 싫은 과거를 떠올리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해방(광복)된 지 70년이 지나고도 한국 미디어에 저항 시대의 잔재가 많은 게 아닐까.
그런데 거기서 또 문득 생각한다. 차라리 한일이 함께 만드는 신문은 안 될까. 경제는 동반자 관계의 시대로 옮겨져 있고, 드라마도 영화도 팝도 지금은 새로운 문화가 오고가며 공동 제작도 드물지 않다. 함께 만드는 신문이 있어 이상할 일은 없을 것이다.
말은 한국어와 일본어의 병용. 사실은 정확히 조사해 객관적 보도에 철저하고 서로 다른 자료와 해석이 있으면 모두 공평하게 소개한다. 기본 이념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문제는 인사인데 사장과 주필을 한일 간에 서로 나눌까. 창간호 사설은 ‘시일야방성대환(是日也放聲大歡·오늘 목 놓아 기뻐하노라)’. 아, 그런 신문이 생기는 것은 언제쯤일까. 국교 정상화 50년 연초에 나도 꿈같은 일을 생각한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