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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정세진]짝퉁의 역습

입력 | 2015-01-15 03:00:00


정세진 산업부 기자

감자칩 열풍을 일으킨 해태의 허니버터칩이 최근 이른바 ‘짝퉁’에 밀려났다. 유사한 맛인 농심의 ‘수미칩 허니머스타드’가 유통매장에서 원조 격인 허니버터칩을 제쳤다. 허니버터칩은 ‘감자칩은 짭짤하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짠맛 대신 꿀을 가미해 달달하면서도 고소하다. 이 제품을 개발한 해태는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해 1년 9개월의 연구 과정을 거쳐 새로운 상품을 개발했다고 한다. 이른바 ‘퍼스트무버(선도자)’인 셈이다.

하지만 필자처럼 맥주를 마실 때 짠맛 일색의 감자칩보다 색다른 맛을 요구하는 소비자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은 간파하지 못한 것 같다. 소비자 수요를 제대로 읽지 못해 원하는 물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 농심은 이 기회를 틈타 대체재를 시장에 발 빠르게 투입했다. 필자 역시도 짝퉁 감자칩을 선택하는 게 그리 싫지 않다. 달달한 맛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짝퉁이 1등을 이긴 비결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KBS의 음악프로그램인 ‘불후의 명곡’도 짝퉁이었다. 2011년에 시작한 MBC의 ‘나는 가수다(나가수)’의 인기가 급상승하자 KBS 측이 부랴부랴 비슷한 음악프로그램을 급조했다. 이 프로그램 초기에 아이돌 스타들이 나와 선배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그러나 인기가 계속될 것만 같던 나가수는 금세 시들었다. 벼랑 끝에 몰린 듯 절박함으로 노래하는 임재범과 같은 ‘희소자원’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불후의 명곡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아이돌 일색의 프로그램에 다양한 가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알리가 가창력 있는 가수로, 재야의 고수이자 리듬앤드블루스(R&B)의 귀재 문명진도 세상 밖으로 나왔다. 무엇보다 젊은층과 중장년층의 공감 코드를 찾아냈다.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과거 스타의 노래를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가수가 부르는 형식 덕분이다. 부모 세대와 함께 TV를 봐도 부담이 없다. 점진적인 변화와 개선을 통해 짝퉁이라는 오명을 벗어난 것이다.

언제부턴가 한국 기업에 기존에 없던 혁신 제품을 내놓는 퍼스트무버가 되라는 충고가 부쩍 늘었다. 더이상 ‘추격자 전략’, 즉 짝퉁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허니버터칩이나 나가수처럼 먼저 나온 제품이 1등을 유지하는 건 아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분야에서는 싸이월드가 페이스북보다 퍼스트무버였다. 세계 최초의 MP3플레이어인 엠피맨은 한국 기업이 개발했지만 소비자는 미국 애플의 아이팟만 기억한다.

소니와 닌텐도, 노키아처럼 퍼스트무버로 성공한 기업조차 기존 상품에 안주하면 ‘승자의 저주’에 빠진다. 한국은 내수시장이 작아 국내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미국식의 퍼스트무버 전략이 통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곳을 먼저 달려가야 ‘영웅’이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앞선 이의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어둠 속을 한발 한발 디디는 소심함도 전략이 될 수 있다.

정세진 산업부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