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로 본 저격의 과학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아군에겐 ‘레전드(전설)’이자 적군에겐 ‘라마디의 악마’라 불린 실존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격에 성공하기 위해선 중력을 비롯해 바람 습도 등 물리적인 요소를 과학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 1초 뒤 4.9m 아래로 곤두박질
화약의 폭발력으로 튕겨 나온 탄환이 총구를 떠나는 순간, 탄환은 지구 중력 때문에 직선운동 대신 포물선운동을 한다. 초속 800∼900m로 쏜살같이 튕겨 나가는 탄환은 1초만 지나도 4.9m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약 2초 뒤 2km 이상 멀리 있는 표적에 도달했을 때에는 30m 가까이 떨어진다.
한편 총알은 음속보다 2배 이상 빠르기 때문에 총을 맞고 난 뒤 총성이 들리는 경우가 있다. 6·25전쟁을 소재로 다룬 영화 ‘고지전’에는 이런 이유로 ‘2초’라는 별명이 붙은 북한 저격수가 등장한다. 총을 맞은 뒤 2초 뒤에 총성이 들린다는 뜻이다.
당시 6·25전쟁에 사용된 러시아제 소총의 탄환은 초속 800m 정도로 영화에서처럼 총알이 총성보다 2초 먼저 도착하려면 표적까지 1.2km 정도 거리를 두고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정도면 한강을 가로지르는 영동대교(1.065km)보다 긴 거리다. 카일의 경우 1.92km 떨어진 표적에 총알이 도착했을 때 총성은 약 3초 뒤에 울린다.
○ 남실바람에 표적 70cm 벗어나
바람도 무시하지 못할 변수다. 피부가 가까스로 느낄 수 있는 약한 바람인 초속 1.6m의 남실바람만 불어도 1km를 날아간 탄환은 표적에서 70cm 이상 벗어난다. 이 때문에 저격수는 표적 근처에서 휘날리는 깃발과 깃대 사이의 각도를 이용해 바람의 세기를 계산해야 한다. 나뭇가지의 흔들림, 아지랑이의 방향 등도 바람의 세기를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가령 바람이 없으면 아지랑이가 수직으로 올라가지만, 바람이 강해질수록 바람의 방향을 따라 아지랑이가 기울고, 초속 4m 이상 산들바람이 불면 아지랑이가 거의 수평으로 움직인다.
○ 고도, 온도, 습도까지 계산해야 백발백중
고도 또한 저격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다. 고도가 높아지면 공기 농도가 희박해 공기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탄환이 더 멀리 날아간다. 해발 0m에서 영점을 잡은 총으로 해발 1.5km의 태백산 정상에서 1km 떨어진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목표 지점에서 1m 정도 벗어난다.
대기 중 습도도 탄환의 궤적에 영향을 미친다. 습도가 높으면 탄환의 회전이 더디다. 저격수들은 실험과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공식을 이용해 고도, 습도, 온도를 계산한 뒤 방아쇠를 당기도록 훈련 받는다.
2km가 넘어가는 경우에는 지구의 자전도 변수가 될 수 있다. 과학교사들의 모임인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세연 교사(서울 명덕고)는 “탄환이 날아가는 동안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좌우로 휠 수 있다”면서 “이를 코리올리 효과(전향력)라고 부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