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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 의붓딸 학대 살인 담당 검사 “녹음파일 아이 목소리에 울컥”

입력 | 2015-01-18 10:23:00


울산지방법원에서 2014년 4월 11일 울산 계모 의붓딸 학대 사건1심 선거 공판이 끝난 후 인터넷 아동보호 단체 ‘하늘소풍’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친구들과 소풍을 가고 싶다”던 의붓딸 서현(당시 8세) 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울산 계모 박모 씨에 대해 살인죄 판결을 받아낸 울산지방검찰청(울산지검)이 1월 아동학대 관련 자료집을 발간했다. 울산지검에 따르면 검찰에서 아동학대 관련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과 결과를 담은 자료집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울산지검은 1심부터 김형준(45) 형사2부장검사를 팀장으로 ‘공판대응팀’(박양호 수사·공판검사, 아동학대 전담 구민기·김민정 검사)을 꾸려 대응했다. 470쪽의 자료집에는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살인 사건 개요, 수사와 공판 개요, 사건 의의, 수사자료 외에도 영국, 미국, 독일의 아동학대 사망 사건 자료 등이 담겼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자료집 발간비용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지검은 400부를 발간해 전국 주요 도서관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배포했다. 김형준 형사2부장검사에게 사건 뒷이야기를 들었다.

“단순히 한 사건을 수사하는 게 아니라 전국 학부형의 마음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재판이 있을 때마다 수백여 명 학부형이 방청석과 법정, 검찰청 마당까지 채운 모습을 보고 사회적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를 실감했습니다.”

해외 아동학대 유사 사례 뒤져


‘울산 계모 학대 사건’은 아동학대 사건에 큰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아동학대 사건은 대부분 상해치사를 적용해 처벌했으나 이 사건은 항소심에서 최초로 맨손과 맨발로 아동을 학대한 사건에 대해 살인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김 검사는 “통상 이슈가 뜨거워졌다가도 한두 달 지나면 차가워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국민이 학부모의 마음으로 아파했다.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모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공판대응팀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해외에 연수를 나가 있는 검사를 총동원해 외국 사례를 찾았다. 그러다 영국의 다니엘 펠카 사건을 발견했다. 김 검사는 “똑같이 아이가 학대받다 사망한 사건인데 영국에서는 ‘살인죄’가 인정돼 법정최고형이 선고됐지만 우리에겐 이런 전례가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김 검사도 비슷한 또래의 자식을 둔 아버지였기에 사건을 수사하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했다. 울산지검은 살인죄로 구속 기소한 계모에 대해 상해치사죄를 적용, 징역 15년을 선고한 1심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했고, 항소심에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적용돼 징역 18년이 선고됐다. 2014년 10월 16일 항소심 선고일의 일주일 뒤가 피해아동의 1주기였다. 김 검사를 비롯한 검사들은 하늘공원을 찾아 작은 꽃바구니를 바치고 추모했다.

“직접 가서 추모하고 재판 결과도 알려주고 싶었어요. 수사를 하다 보면 사망 당시 사진도 있지만, 아이의 생전 사진도 보고, 주변 조사를 많이 하다 보니 공판 과정에서 아이 얼굴이 아른아른해요. 죽은 아이의 영혼이 있다면 어른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그리고 이제는 말할 수 없게 됐으니 법정에서 우리를 통해 뭘 남기고 싶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온 마음을 다해 수사하고, 공판에 임하자’가 이 사건을 맡은 검사들의 공통된 다짐이었다. 항소심은 부산고등법원에서 이뤄졌다. 보통은 부산고등검찰청에서 공판에 관여하지만 봉욱 울산지검장의 각별한 관심과 지지 덕에 김 검사는 부산에서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항소심 공판에서는 특히 계모 박씨의 휴대전화에서 복원된, 아이를 구타하는 녹음파일이 증거로 제시돼 재판장에서 울려 퍼졌다.

2014년 12월 5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 주재로 열린 ‘아동보호 현장실무 전문가 간담회’(왼쪽). 울산지방검찰청 아동학대 사건을 전담한 검사와 수사관들. 왼쪽부터 김장진 수사관, 이수진·김민정 검사, 김형준 형사2부장, 박양호 검사, 허진기 수사관.


이 사건이 우리 사회 새움 되길


“1심 선고를 받고 굉장히 답답한 마음이 들었어요. 부장으로서 후배들에게도 미안했고, 죽은 아이 대신 목소리를 내준 분들이나 방청석을 가득 메운 분들에게도 죄송했죠. 그래서 항소할 때 재판 과정에서 부족한 게 없었는지,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모든 리스트를 나열했어요. 그 덕에 법의학자인 이정빈 교수의 추가 감정서를 제출할 수 있었고요. 언론에는 휴대전화 녹음파일 복원이 가장 큰 증거처럼 나왔는데, 처음에는 가장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게 녹음파일 복원이었어요. 이미 초기에 포렌식(forensic) 분석을 했던 터라 다시 해도 뭐가 나올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가 구타당하는 소리가 녹음된 파일이 복원됐어요. 아이가 끝까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게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 사건을 계기로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겨났다. 지난해 1월 28일에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됐고, 울산지검은 ‘아동학대 중점 대응센터’를 설립했다.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대한 예산도 올해부터 늘었다. 김 검사는 “그 사건 이후에도 다른 아동학대 사건들을 접했다. 한 사건의 처리로 끝나서는 절대 안 될 일”이라며 “아직도 그늘에 가려진 아이가 많을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이 ‘잎새 지고 난 자리, 새움 돋는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너무나도 마음이 무거운 사건이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새움이 돋아나는 변화가 시작되지 않았나 싶어요. 자라나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이 사건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새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97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