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이르면 올해에 3만 달러 선을 돌파한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3%대 중반, 환율이 지난해 수준(약 1053원)을 유지한다면 빠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에 3만 달러 달성이 확실시 된다”라고 말했다.
‘국민소득 3만 달러’는 명실상부한 ‘선진국 클럽’ 진입의 기준선으로 인식된다. 한국은 2006년부터 거의 10년째 2만 달러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동안 소득 기준으로는 동유럽, 중남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하위권 국가와 동급이었다. 다만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이르더라도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국민들이 느끼는 실제 살림살이는 2만 달러 국가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환율 하락, 통계기준 개편이 결정적
정부 계획과 달리 한국경제가 3%대 저성장에 머물고 있는데도 목표 조기달성을 바라보게 된 것에는 두 가지 결정적 호재(好材)가 작용했다. 하나는 2013년에 평균 1095원이던 원-달러 환율이 지난해에 1053원으로 하락(원화가치는 상승)하면서 달러 환산 국민소득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만 4%의 국민소득 증가효과가 발생했다.
더 큰 요인은 통계기준 개편이다. 유엔이 권고한 새로운 국민계정체계(SNA)를 한국이 지난해 3월 도입하면서 드라마 제작비, 기업 연구개발(R&D) 비용, 무기류 생산액 등이 새로 소득 통계에 잡혔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이 두 가지 요소 때문에 늘어난 국민소득만 1인당 3000~4000달러에 이른다.
과거 사례를 봐도 국민소득의 갑작스런 증가에는 경제의 고도성장보다 환율 등 외적 변수가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1만 달러를 달성하고 이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지만 정부가 1만 달러 선을 유지하기 위해 환율을 낮게 유지하면서 1997년 외환위기의 충격이 커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노무현 정부가 2007년에 2만 달러를 달성했을 때에도 외환위기 이후 처음 세 자리 수로 내려간 환율이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국민소득은 ‘숫자놀음’의 성격이 적지 않지만 대부분의 정권은 정치적인 측면 등을 고려해 관련 목표 설정과 달성에 큰 의미를 뒀다. 박 대통령이 최근 신년 기자회견에서 ‘4만 달러’ 비전을 언급한 것도 청와대 비선(秘線) 논란 등 악재를 돌파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정부의 속내는 복잡하다. 지난 2년 간 마땅히 홍보할 만한 경제적 성과가 적었기 때문에 ‘어부지리 3만 달러’라도 내심 반기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국민소득과 관계없이 체감 경기가 여전히 부진하다는 점에서 이를 치적(治績)으로 내세웠다가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국민들도 과거와 달리 숫자뿐인 성과를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따라서 국민소득을 올리려고 정부가 환율 하락을 유도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일반 국민들은 3만 달러 시대를 체감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체 GNI에서 가계가 가져가는 비중은 1975년 79%에서 지난해 61%로 줄어들었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반적인 경제의 역동성이 예전보다 떨어진데다 교육 주거비 등 필수적인 지출이 많아 가계가 소득 증가를 체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의 산업구조를 보면 수출 위주의 제조업보다는 가계 경제와 연관성이 깊은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다”며 “서비스업 부문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저물가 때문에 3만 달러 달성에 실패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소득이 증가하려면 실질성장률이 아니라 물가상승률이 포함된 경상성장률이 올라야 한다. 올해는 경기침체와 유가급락으로 1%대 물가가 유력해지고 있다. 또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신흥국에서 돈이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급등(원화가치 하락)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남아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