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이민자 집단거주지 르포
17일 프랑스 파리 북부 센생드니의 한 아파트 단지 옆길에 불에 탄 자동차가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2005년 파리 북부 소요 사태의 중심지였던 센생드니는 마약과 총기 거래 등 각종 불법 행위의 온상으로 꼽힌다. 센생드니=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전승훈 특파원
젠빌리에는 ‘샤를리 에브도’ 잡지사 테러범인 셰리프 쿠아시가 약 10년간 거주하며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을 키운 곳이다. 이날 모스크 앞에는 경찰관들이 대거 배치돼 있었다. 기자가 “평소에도 이렇게 경비를 서느냐”고 묻자 경찰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뜸 “기자 신분증을 보여 달라”며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프랑스는 어떤 주의와 주장도 모두 포용하는 ‘톨레랑스’(관용)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캄보디아 독재자 폴 포트도 프랑스에서 원시공산주의를 배웠고 마오쩌둥(毛澤東) 밑에서 중국 문화혁명을 주도한 저우언라이(周恩來)도 프랑스 유학파였다. 이처럼 타 문화에 대해 관용적인 프랑스가 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의 표적이 됐을까.
프랑스 정부가 대도시 외곽 지역에 건설한 약 100만 채의 공공임대 주택은 세월이 흐르면서 가난한 이민자, 불법 체류자, 실업자들의 집단 거주지로 변했다. 이곳은 경찰은 물론이고 소방서 구급차량도 맘껏 다닐 수 없어 ‘치외법권 지역’으로 불린다. 2005년 프랑스 북부 폭동의 중심지였던 센생드니를 찾아가니 사방에서 쏟아지는 적대적인 눈길에 머리카락이 쭈뼛하게 곤두서는 것 같았다. 거리 곳곳에는 깨진 술병이 나뒹굴었고 소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자는 센생드니의 낡은 아파트 단지 가운데 위치한 들라퐁텐 병원을 찾았다. 지난해 8월 열 살짜리 흑인 소년 제카리아의 억울한 죽음으로 프랑스 언론이 대서특필한 병원이다. 소년의 부모는 오후 11시 반경 갑작스러운 복통에 시달리는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소방서와 병원 구급대, 택시 회사에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이들은 모두 “이 시간엔 너무 위험해 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 결국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걸어서 오전 3시경 병원에 도착했는데 ‘급성 맹장염’ 진단을 받은 아이는 수술이 너무 늦어져 결국 숨졌다. 들라퐁텐 병원 주차장에서 만난 구급대원은 “지난달에도 구급차가 복면을 쓴 청년들에게 공격당해 유리창이 깨지고 의료진이 휴대전화와 소지품을 털리는 사건이 두 차례나 발생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무슬림 인구는 약 500만 명.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73년까지 프랑스의 경제 붐을 타고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세네갈 시리아 레바논 등 프랑스의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식민지 출신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일자리가 줄어들고 아랍계 이민자 2, 3세들이 프랑스 사회로부터 배제당하자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1995년 알제리무장이슬람그룹(GIA)의 생미셸 지하철역 테러사건, 2005년과 2007년 파리 북부 폭동사건으로 이어졌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은 외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국민들이 일으킨 자생적 테러라는 점에서 “이슬람의 실패가 아니라 프랑스 이민정책의 실패”(뉴욕타임스)라는 지적이 나온다. 존 보언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파리 외곽의 변두리는 이민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의 상징적 공간”이라며 “절망에 빠진 이민자 젊은이들이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가 선동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