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아동학대’ 파문 확산] [어린이집 처음부터 다시]<상>과감한 구조조정 필요
김 씨는 신망이 높은 어린이집 운영자이자 원장이었다. 2012년까지만 해도 정원 80명을 거의 다 채우며 안정적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했다. 폐쇄회로(CC)TV를 갖추고, 민간 시설로는 드물게 4년제 대학 유아교육과를 나온 교사만 채용하는 등 투자도 계속해왔다.
하지만 교육부가 영유아 교육을 책임지자는 취지로 만 3∼5세 누리과정을 도입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만 3세 이상 어린이집 원생들이 유치원으로 빠져나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원생이 50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월수입만 800만∼900만 원까지 줄었다. 법으로 규정된 교사 수와 임금은 줄일 수 없어 난방비, 전기료 등을 내지 못했다. 김 씨는 “민간 어린이집의 경영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원생이 더 줄지 않을까 걱정이다”라며 “현재의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한 아동 폭력 사고는 재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걱정했다.
김 씨처럼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하는 민간 어린이집(가정 어린이집 포함)이 늘고 있다. 상대적으로 경영 상태가 안정적이고 보육교사 보수도 높아 서비스 질이 좋은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보육 수요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누리과정이 도입되면서 ‘어린이집 교육 과정이 유치원보다 나쁘다’는 인식이 커져 경영난은 더 악화될 공산이 크다.
현재도 민간 어린이집과 국공립의 양극화가 상당히 진행됐다.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국공립은 교사 중 50.5%가 최소 5년 이상 경력을 지니고 있지만 민간과 가정 어린이집은 5년 이상 경력자가 전체의 30%도 안 된다. 민간 교사의 평균 월급(176만 원)도 국공립(212만 원)보다 약 20% 낮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공립 어린이집에는 대기자가 넘치는 반면에 민간 어린이집은 원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은설 육아정책연구소 누리과정통합연구팀장은 “영세한 민간 어린이집의 경우 원장이 차량 운전까지 도맡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민간과 국공립의 격차가 큰 현재의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 영세 민간어린이집 과감한 구조조정 필요
이미화 육아정책연구소 기획경영실장은 “구조조정 없이 영세 어린이집에 대한 지원금을 확대하면 보육교사 임금은 올라가지 않고 원장만 이득을 볼 수 있다”며 “서비스 품질에 따라 지원을 차등해 영세 어린이집을 자연스럽게 퇴출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국공립 어린이집 전환 획기적으로 늘려야
민간 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전환하는 사업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는 매년 국공립 어린이집을 150개씩 늘리겠다고 했지만 2013년과 지난해 총 250개를 늘리는 데 그쳤다. 전체 민간 어린이집이 3만8000여 개를 넘어선 것을 감안하면 확충 속도가 느리다.
정부는 2017년까지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는 영유아의 비율을 30%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공립 어린이집 약 5300개가 새로 생겨야 한다. 터를 매입해 신축하는 방식(1곳당 약 20억 원)으로는 10조6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이 든다. 하지만 민간 어린이집을 국가가 매입하는 방식은 1곳당 약 2억5000만 원이 들어 총 1조3250억 원이면 확충이 가능해진다. 그동안 국공립 어린이집 신축 비용의 20∼30%는 기업 지원으로 조달된 만큼 국가 부담은 더 줄일 수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비용은 현재의 무상보육을 일부 조정하는 것으로 마련이 가능하다. 맞벌이가 아닌 가정 가운데 소득수준이 높은 상위 30%의 보육료 지원을 축소하자는 것.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스웨덴도 0∼2세의 경우 보육시설 이용률이 10% 미만일 정도로 가정 보육을 장려하고 있다”며 “소득 상위 그룹의 전업주부에게까지 보육 지원을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고, 정부 예산 축소분을 현재의 보육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사용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