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시대, 달라진 소비] 유행어로 본 소비 트렌드
1990년대 생겨난 ‘잇(It·그것이라는 뜻으로 유행품을 일컫는 말)’은 가장 주목받는 아이템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신조어였다. 사람들은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잇 백(It bag·최신 유행 가방)’ ‘잇 슈즈(It shoes·최신 유행 구두)’에 지갑을 열었다.
남들처럼 유행에 동참하려는 열망은 내가 먼저 그 아이템을 얻으려는 욕망으로 진화했다. 2003년부터 쓰기 시작한 초기 수용자라는 뜻의 ‘얼리어답터’는 한국 전자제품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 2008년 불었던 ‘신상’(신상품) 열풍에 힘입어 한국 소비자는 해외 유명 브랜드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2000년대 중반 디자인을 우선시하던 애플이 화려하게 부활하자 ‘디자인경영’이 국내 기업의 화두가 되기도 했다. 이 시기 소비자들은 비슷비슷한 기능보다 디자인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위기, 취업난, 전월세 가격 상승 등을 거치며 소비자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해외 유명 브랜드의 옷이나 가방 대신 립스틱 같은 소품으로 동일한 만족을 얻는 ‘스몰 럭셔리(Small Luxury)’가 하나의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는 가격과 우수한 품질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소비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가 됐다. 그동안 지갑을 너무 쉽게 열어 온 소비자를 빗대 ‘호갱’(호구 고객이라는 뜻의 은어)이라는 자조적인 표현도 등장했다.
달라진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기업의 광고나 판촉 전략도 바뀌고 있다. 무형의 서비스를 내세우거나 기업 이미지를 부각하는 대신 싼 가격을 내세우는 직설화법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소셜커머스 업체 ‘쿠차’의 ‘싸다구’ 광고 카피가 대표적인 예다. 김병희 서원대 교수(광고홍보학)는 “불황을 맞은 기업들이 이미지 광고로 당장의 매출을 바라보지 못하게 되자 예전에 ‘B급 광고’로 분류되던 실용적 메시지의 광고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