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 사람 대신 동물을 대상으로 외과실습을 하고 있다. 이정렬 교수 제공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①어깨너머로 구경만 한다고 대가나 명의가 될 수 없다. ②화가가 남의 화폭을 준비해 주고 붓을 씻어 주고 물감을 풀어 주는 일만으로 대가가 될 수 없듯 의사도 수술 보조를 해주는 것만으로 명의가 될 수 없다. ③화가가 직접 그려보고 때로 망쳐서 화폭을 찢어버리기도 해봐야 감동을 주는 그림을 그릴 수 있듯 의사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수련을 거쳐야 명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화가처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나 천재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명의가 되는 길은 화가의 고통스러운 창조 행위에 견줄 만큼 쉽지 않은 길이다. 무엇보다 의사에게는 생명존중 정신과 반복 훈련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정신적 가치보다는 물질적 가치가 강조되는 세상이다 보니 의사의 직업윤리도 많이 약해져 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젊은 의사들 탓만 할 수는 없는 일. 변화된 세상에 맞춰 의사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연습하고 경험하고 때로 실수도 하면서 오늘까지 이른 필자의 수련 방식도 옛날 방식이 되어가고 있다. 더구나 요즘처럼 환자 안전이 최우선 관심사가 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직접 경험을 통해 수련하라는 말도 무책임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훌륭한 의사들을 길러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외과의사의 바느질 실력을 키운다고 방석을 앞에 놓고 바느질을 가르치는 분도 있었지만 이제 그 정도 갖고는 어림도 없다. 최근 필자는 국제학회에 참석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는데 선진국 의사들도 필자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
요즘 심장외과 국제학회에서는 논문 발표 등 이른바 두뇌 경쟁이 사라지고 있다. 그 대신 세계적 대가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와 돼지나 개를 수술대에 눕혀 놓고 직접 심장을 적출해가며 세세한 수술기법을 후배들에게 가르치는 ‘체험 학습의 현장’으로 바뀌고 있다. 아직까지는 시간적, 공간적 제한에 비용 문제가 겹쳐 실제 수술과 똑같은 환경에서의 실습은 못하고 있지만 어쨌든 수술 경험을 직접 가르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이다.
○ 수련의 수술체험 학습 늘려야
필자의 수술팀도 이런 변화에 맞춰 지난 1년 동안 흉부외과 수련의들을 대상으로 9차례에 걸쳐 ‘심장수술 정복’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1년여 노력 끝에 “아! 바로 이거”라는 공유점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수술대에 사람이 아닌 동물을 눕혀 놓는다는 점만 다를 뿐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 수련의들이 직접 메스를 들고 집도하고 문제가 생기면 서로 조언을 주고받는 동안 선배 의사(멘토)들은 뒤에서 결정적인 조언만 하면서 최소한의 시범만 보인다. 교육 효과를 딱히 검증해볼 기회는 많이 없었지만 이렇게 만든 프로그램이 전국 흉부외과 수련의들에게까지 호응을 받으며 국제학회(The 1st Cardiac Surgical Skill Training Workshop using Canine Animal Lab·2014년 12월 6일)에까지 소개됐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특히 지난해 12월 6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는 소아심장 수술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인 토머스 스프레이 교수가 직접 멘토로 참여해 시범을 보여주면서 우리 프로그램이 매우 우수하고 차세대 의사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훈련이라고 극찬해줘 매우 기뻤다.
이제 외과의사 교육도 과거 도제식 교육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하며 이미 이런 노력들이 의료 현장에서 시행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와 교육계의 관심과 재정적, 제도적 지원을 희망한다. 이를 통해 기본기가 탄탄한 외과의사들이 길러져 환자들에게 더욱더 안전하고 질 높은 수술 서비스가 제공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