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미제라블’ 2차 오디션 현장
11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무대에 오를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배역 공개 2차 오디션 현장. 주인공 장발장 역에 지원한 한 남성이 심사위원들 앞에서 노래와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뮤지컬 ‘레미제라블’ 오디션이 열린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의 한 공연장. 마리우스 역에 지원한 20대 남성이 오디션을 마치고 복도로 나오자마자 바닥에 풀썩 쓰러지며 흐느꼈다. 차례를 기다리던 다른 지원자들도 남의 일이 아닌 양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최종 35명의 배우를 뽑는 ‘레미제라블’ 오디션에는 총 2500명이 지원했다. 1차 오디션을 통과해 2차 오디션에 오른 300여 명 가운데 80여 명이 15일 무대에 섰다. 대기실에는 깜짝 발탁을 꿈꾸는 연극영화과 학생부터 매니저를 대동한 기존 배우까지 다양한 지원자들이 모여 있었다.
지원자 중 일부는 유명 배우나 성악가 등에게 시간당 10만∼30만 원에 달하는 레슨비를 지불하고 오디션 지정곡을 연습했다고 전했다.
주연급은 주로 개별 오디션으로 진행한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유명 배우들은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걸 불명예로 여겨 서로 마주치지 않게 오디션 시간을 달리 배정한다”고 말했다. 물론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스타나 인기 아이돌을 캐스팅할 때는 오디션 없이 오히려 제작사가 끈질긴 구애 끝에 모셔간다.
오디션에는 수천 명이 몰리지만 작품과 배역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부족한 참가자가 많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헤드윅’, ‘라카지’ 등을 연출한 이지나 연출가는 “오디션에 합격하려면 주연이나 비중 큰 조연만 고집할 게 아니라 자신의 역량과 목소리가 잘 맞는 작품과 배역을 골라 똑똑하게 지원할 줄 알아야 한다”며 “지원자의 80% 정도가 실력이 없거나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온다”고 지적했다.
무명이었다가 오디션을 통해 주역을 꿰차는 혜성 같은 스타도 나온다.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데뷔 17년차 배우 오만석과 함께 주인공 롤라 역에 더블 캐스팅된 신인 강홍석이 대표적이다. 강홍석은 “여장 남자인 롤라로 완벽하게 변신해 오디션에 임했다”고 말했다.
“의상 디자인하는 후배한테 부탁해 롤라 의상을 제작해 입고, 3일간 수소문한 끝에 이태원에서 280mm 하이힐도 사 신고 오디션을 봤어요. 모델인 후배에게 하이힐 워킹 수업도 받았죠. 여장 남자의 삶을 이해하려고 오디션 보기 한 시간 전에 롤라로 분장하고 대학로를 걸었는데 따가운 시선이 한 몸에 느껴지더라고요.”
그의 간절함은 통했다. 롤라로 변신한 그가 오디션장에 들어서자마자 해외 스태프들은 박수치며 환호했다. 강홍석은 특유의 소울풍의 목소리와 신인답지 않은 연기로 내로라하는 선배 배우들을 제치고 주연 자리를 꿰찼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