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규(1958∼ )
입원하러 가기 전날 밤
갚아야 할 빚을 다 적어 놓아야겠다고
몰래 스마트폰 빛을 밝히며 책상 앞에 앉았다가
서랍에서 발견한
십 년 전 낙서.
그 시절
원인 모를 복통에 시달리며
배를 움켜쥐고 쓴.
하느님,
제가 일 잘 하는 사람인 줄 알고
빨리 불러 일 시키실 작정을 하시면 곤란해요.
하느님,
아직 처리할 게 많아요.
제발 빚 좀 다 갚고 가게 해 주세요.
하느님, 아니 하나님이라도 좋아
제발 십 년만 더 살게 해 주세요.
상태가 위중하건 그렇지 않건 수술을 받는 건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그 전날 밤, 식구들 모르게 책상 앞에 앉는 화자. 혹시 잘못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비장한 마음으로 그가 적으려는 것은 ‘갚아야 할 빚’의 목록이다. 종이를 찾으려 서랍을 뒤적이다가 ‘발견한/십 년 전 낙서’, ‘하느님, 아직 처리할 게 많아요./제발 빚 좀 다 갚고 가게 해 주세요’! 제가 중병에 걸린 것만 같았던 그때 화자는 모든 신을 향해 애걸했었다. 그러니 ‘제발 십 년만 더 살게 해 주세요’! 무사히 수술을 마친 뒤에 화자는 십 년 세월에도 달라진 게 없는 저 자신을 씁쓸한 미소로 돌아본다. 막다른 상황에 처하면 우리는 신을 부르고 맹세한다. 이 고비만 넘기게 된다면 새로 태어난 듯 살리라고. 그 맹세를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화자에게 이후 ‘십 년만 더’ 주어지면 충분할까? 아일랜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묘비명을 이리 남겼단다.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게 사실이라면 재능을 활짝 펼치며 명예와 부를 누리다 95세에 세상을 뜬 사람이 ‘어영부영’했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제 삶은 늘 짧게 느껴지고 제 죽음은 언제라도 이른 법.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