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먼저 김 과장의 연간 급여 총액이 얼마인지 살펴봐야겠지요? 5300만 원이네요. 연봉이 그래도 꽤 괜찮은 편이지요. 올해 마흔두 살이고 벌써 16년째 오롯이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김 과장이니 뭐 그 정도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연봉으로 보입니다. 한데, 자신의 연간 급여 총액을 바라보는 김 과장의 미간이 조금 우그러지네요. 왜 그러는지 다들 아시죠? 아니, 내가 이 돈을 벌어서 다 어디에 쓴 거지? 뭐, 그런 생각 때문이겠죠.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나라에서, 국세청에서 하나하나 친절히 복기해 주니, 연말정산도 그리 나쁜 제도는 아니네요. 그걸 알아보는 게 오늘 소설의 핵심일 테고요.
우선 기본공제 항목부터 볼까요? 본인기본공제는 당연한 건데, 배우자 공제는… 이런 안타깝게도 김 과장은 받을 수 없겠네요. 김 과장의 아내가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아파트 단지 정문 앞 대형 마트 계산원으로 일했기 때문이지요. 소득이 발생한 배우자는 공제 혜택이 없으니, 체크해선 안 되겠죠. 안 그래도 지난 주말 김 과장은 그 일로 아내와 짧은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표도 안 나게 일하는 바람에 공제 혜택만 줄어들게 되었다고. 김 과장이 그렇게 투덜거리자 아내가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표도 안 나게? 당신은 정신이 있는 사람이야 없는 사람이야? 내가 그거 일하고 싶어서 일했어? 어머니 칠순 때 보내 드린 돈은 어디서 나온 건데? 첫째아이 영어학원 특강비는 어디서 마련한 건데? 참 나, 마트에서 남의 팬티에 바코드 찍으면서 일했더니 뭐? 공제를 못 받는다고? 마누라가 공제 항목으로밖에 안 보이냐?
그 뒤 항목부터는 주로 지출 내용이네요. 교육비로 700만 원 가까이 지출되었고 의료비로 150만 원,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로 400만 원, 신용카드로 2700만 원…. 으응? 2700만 원? 아니 뭐 한다고 신용카드를 이렇게나 많이 쓴 거지? 김 과장은 잠깐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뒤로 한 번 젖혀 봅니다. 뒷목이 땅겨 오지만, 국세청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요. 김 과장은 월급 때마다 바로바로 인출되어 나가던 신용카드 결제 금액을 떠올려 봅니다. 생활비의 거의 대부분을 김 과장 명의의 신용카드 한 장으로 쓰고 있는 처지이니, 거기에 아이들 컴퓨터 할부금과 계절마다 한두 벌씩 사 주었던 옷가지와 신발, 펑크가 난 달에 어쩔 수 없이 썼던 현금서비스까지…. 뭐, 틀린 계산은 아닌 게 분명하네요. 이러니 돈 벌어서 신용카드 회사에 다 가져다준다는 말이 나온 거겠죠. 주택마련저축은 작년에 해지했으니 해당 사항이 없고 따로 연금저축을 내는 것도 없으니 공제 혜택이 없네요. 아, 그래도 기부금 항목에 해당되는 게 하나 있네요. 회사에서 일괄적으로 걷는 지정기부금으로 17만 원 정도 낸 게 보입니다. 그밖에 해당되는 사항은 김 과장에겐 없는 거 같습니다. 자, 그래서 결과는…? 참고로 작년 김 과장은 연말정산 덕분에 아내 모르게 30만 원 정도 환불을 받아 한두 달 요긴하게 비상금으로 쓴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 안타깝게도 27만 원을 세금으로 더 납부해야 되네요. 아마도 월급에서 알아서 착착 차감되어 나오겠지요. 국세청은 직장인들에겐 유달리 관용이 없으니까요. 그럼 또 그만큼 마이너스가 생기니까 당장 생활비가 펑크 나겠죠? 하지만 걱정 마세요. 또다시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으면 되니까요.
이기호 소설가
노예가 무슨….
이상, 간단하게 살펴본 김 과장의 연말정산 입력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