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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쓴 예산 1514억, 1970억… 쓸 곳 없어도 ‘습관적 편성’

입력 | 2015-01-21 03:00:00

[나라 가계부 내가 챙긴다]
[1부: 줄줄 새는 국고]<中>정부-국회 ‘시늉뿐인 결산심사’




교육부 산하 한국장학재단은 2012, 2013년 2년 연속으로 1000억 원대의 예산을 쓰지 않고 불용(不用)으로 처리했다. 2012년 불용액은 1514억 원으로 당시 교육부 전체 불용액의 62%나 됐다. 2013년에도 재단 예산의 38%, 교육부 전체 불용액의 20.7%인 1970억 원을 불용액으로 처리했다. 교육부 예산의 다른 부분에서 불용액이 크게 증가한 탓에 비중은 줄었지만 금액은 450억여 원 증가했다. 불용액 증가는 2012년부터 국가장학금제도가 확대되면서 학자금 대출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지만 예산을 그대로 편성했기 때문이다.

국회 결산심사 과정에서 수차례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한국장학재단은 2014년에도 2012년 및 2013년 불용액과 비슷한 1914억 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2015년 예산 편성 때는 오히려 정부 출연금이 1년 전보다 1400억 원 증액된 3300억여 원으로 확정됐다.

○ 반복되는 지적 반영 안돼

혈세가 잘못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선 정부의 예산 편성→국회의 예산 심의→정부의 예산집행과 결산→국회의 결산심사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특히 결산심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정부가 적극 수용해야 다음 예산 편성이나 집행에서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경우가 줄어든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결산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적극 개선해야 비효율적 예산 집행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장학재단의 사례처럼 정부의 사후 조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13 회계연도 결산 심사 결과 시정요구사항에 대한 조치 결과’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3년 국회는 2012년 예산에 대한 결산을 하면서 52개 정부 부처 및 산하기관에 1523건의 시정조치를 지시했지만 지난해 11월 말까지도 조치가 완료되지 않은 사항이 590건(38.7%)에 달했다. 10건 중 4건꼴로 조치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결산보고서가 국회를 통과한 셈이다. 그나마 조치가 완료됐다고 보고한 것도 “향후 노력하겠다” “다음 예산 편성에 반영하겠다”는 의례적 답변에 그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국회가 결산을 심사해 시정 요구를 하면 정부가 즉시 처리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반드시 예산안 편성에 반영해야 하는 강제규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예산안 편성 때 똑같은 잘못이 반복되곤 한다.

실제로 2013년도 예산안 결산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예산 불용액이 증가한 것이었다.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불용 처리된 예산은 18조1000억 원에 이른다. 2013년도 예산(311조7638억 원)의 5.8%로 2012년 불용액(5조7000억 원)보다 217% 증가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한국장학재단은 돈은 있는데 쓸 데가 없어서 불용액이 생겼고 정부 전체로는 예산에는 잡혀 있는데 실제로는 돈이 없어서 사업을 포기해 불용액으로 회계 처리한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세수 예측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정부가 올해 예산안 편성에서도 세수를 낙관적으로 추계했다고 지적했다.

○ 국회도 결산엔 소홀, 표심 얻는 예산에만 관심

국회 역시 결산을 소홀히 여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예산 심의 과정에선 의원들이 단돈 1원이라도 자기 지역구 사업에 더 가져가려 하면서도 이미 쓰고 난 예산에 대한 결산은 통과의례처럼 대충 처리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실제로 국회 예결위는 2015년도 예산안 심의를 위해 여섯 번의 전체회의와 일곱 번의 조정소위를 열었다. 공식적인 회의뿐만 아니라 물밑에서도 여야 간에 수십 차례 협의가 진행됐다. 반면 지난해 7월 있었던 2013년도 예산안 결산은 결산심사소위를 세 번 열어 정부 원안대로 가결해 본회의에서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국회의 결산심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예결위 상설화, 감사원의 국회 이관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유야무야됐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의락 의원이 국회의 결산심사 결과 시정 요구를 받은 사항 중 예산 반영이 필요한 사항은 반드시 예산안에 반영하도록 의무화하고, 그 결과를 예산안에 첨부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2013년 5월 제출했지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국회는 결산심사 결과 정부의 부당한 예산집행 사례가 드러나면 △변상 △징계 △시정 △주의 △제도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명백히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집행된 사례임에도 변상이나 관련자 징계를 요구하기보다는 주의나 제도 개선 같은 비교적 낮은 수준의 조치를 요구해왔다. 2013 회계연도 결산 당시 1523건의 지적 가운데 징계만을 요구한 것은 1건에 불과했다. 변상 요구는 아예 없었다.

박완규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압박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국회가 강도 높은 조치를 요구하고 실제로 조치를 제대로 했는지를 끝까지 챙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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