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일본인 인질 2명 살해 협박]IS, 아시아까지 테러전선 확대
○ 인질극에 일본 열도 충격
인질 협박 소식이 알려진 20일 오후 NHK 등 일본 방송은 일제히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긴급속보를 내보냈다.
일본인들은 2004년 ‘이라크 악몽’을 떠올렸다. 당시 IS의 전신으로 알려진 ‘이라크 내 성전을 위한 알카에다 조직’이 고다 교세이(香田證生·당시 24세) 씨를 납치한 뒤 이라크 주둔 자위대 병력의 48시간 내 철수를 요구했다. 일본이 협상을 거부하자 테러 조직은 고다 씨를 참수했다. 당시 일본인이 인질로 잡혀 참수된 것은 처음이었다.
IS는 미국의 이라크 공습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해 8월 미국 기자 제임스 폴리 씨를 비롯해 지금까지 서방인 5명을 참수했다. AP통신은 20일 동영상에 나오는 남성이 과거 배포된 인질 참수 동영상에도 등장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영국 BBC는 “인질 사태가 아베 총리에게 심각한 정치적 문제를 던져줄 것”이라며 “아베 총리의 적극적 평화주의에 반대해온 세력들이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며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베 총리의 숙원 사업인 평화헌법 개정 및 국방군 보유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지난해 10월 2일 고토 겐지 씨(위 사진)가 자신의 트위터에 ‘시리아 취재에 들어갑니다’라는 글과 함께 올린 동영상의 한 장면. 유카와 하루나 씨(아래 사진)도 지난해 6월 24일 자신의 구글 플러스에 ‘이라크 모처, 미군 험비 앞에서’라는 글과 함께 이 사진을 올렸다. 사진 출처 고토 겐지 씨 트위터·유카와 하루나 씨 구글 플러스
IS가 제시한 72시간의 데드라인이 언제인지는 불투명하다. NHK는 협박 영상에 ‘NHK 월드 뉴스’의 17일자 영상이 포함돼 있어 이날 이후 편집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영상 확인 시간이 20일 오후 3시 전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를 기점으로 하면 23일 오후 3시 전에 72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협박 영상의 진위도 완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사토 아키라(左藤章) 방위성 부대신은 20일 저녁 기자들에게 “영상을 몇 번이나 다시 봤는데 합성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자국민을 구출하기 위해 자위대를 파견하는 시나리오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도 회피하는 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개별적 자위권만 허용하는 현행법도 걸림돌이다.
아베 총리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테러에 타협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일본 정부의 2억 달러 지원은 피란민을 돕기 위한 것이다. 과격주의나 이슬람 사회와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민간인을 앞세워 IS 측과 협상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IS 대원이 구체적인 액수까지 거론하며 인질 몸값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점에 주목했다. IS 조직은 지금까지 인질 몸값을 요구하는 소위 ‘인질 비즈니스’는 비공개적으로 진행해 왔다.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사태는 한국에도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IS가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동과 아프리카에는 한국 교민 2만5000여 명이 진출해 있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일본인 인질 사건은 IS가 글로벌 테러 조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행위다. 이제 한국도 IS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