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佛 여기자 IS지원 체험기 출간… ‘지하드 2.0’ 선전술 생생

입력 | 2015-01-22 03:00:00

잘생긴 남자가 “집-돈 준다” 유혹… 결별 선언하자 “쳐 죽여라” 선동
SNS계정 만들자 친구 요청 쇄도, 총책과 연락… 며칠뒤 “결혼하자”
유튜브에 사형선고 동영상 돌아… 전화-이름 바꾸고 경찰 보호받아




프랑스 탐사보도 전문기자 아나 에렐 씨가 자신의 방에서 노트북으로 이슬람국가(IS) 대원과 연락하며 IS 대원 모집 체험기를 쓰고 있다(왼쪽 사진). 그가 쓴 ‘지하디스트의 가면을 쓰고’의 표지. 15일 발간됐다. 로베르 라퐁 출판사 제공

프랑스의 탐사보도 전문 여기자 아나 에렐(가명·30) 씨가 인터넷을 통해 직접 ‘이슬람국가(IS)’의 신병 모집책과 접촉한 뒤 자신이 겪은 생생한 체험담을 책으로 펴냈다. 15일 발간된 이 책은 최근 시리아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김모 군을 비롯해 전 세계 평범한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IS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선전술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외톨이 청소년이라면 자신에게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는 IS 대원에게 마냥 빠져들 것”이라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에렐 씨가 인터넷을 통한 IS 잠입취재를 결심한 것은 지난해 4월. ‘왜 그토록 많은 프랑스 젊은이들이 IS의 유혹에 넘어가는가’를 알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먼저 페이스북에 ‘이슬람으로 막 개종한 20대 여성 멜라니’라는 가짜 계정을 만들었다. 테러리스트 그룹의 사진과 비디오를 공유해 이슬람 극단주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음도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유럽 출신 IS 대원들이 ‘친구 맺기’를 요청해 왔다. 드디어 IS 신병모집 총책이라고 밝힌 프랑스 출신 IS 대원으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그는 자신을 IS 최고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의 측근이라고 소개했다.

아부 빌렐(38)이라고 실명을 밝힌 이 남자는 머리에 젤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끼고,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의 향수를 사용하는 세련된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척 봐도 전형적인 ‘메트로섹슈얼’(대도시에 거주하며 외모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는 젊은 남성)이었다. 그는 ‘멜라니’에게 “지금 바로 시리아로 오면 좋은 아파트에서 살게 해주고, 보육원에서 아이를 돌보는 착한 일을 하면서도 돈도 많이 벌 수 있게 해주겠다”고 유혹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인터넷 화상 전화 ‘스카이프’를 통해 진행됐다. 에렐 씨는 히잡(머리에 쓰는 스카프)을 쓰고, 아랍어식 표현을 쓰며 대화를 이어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오던 남자는 에렐 씨가 잠시라도 화면에서 벗어나면 “어디에 있느냐”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영혼이 너무 맑아 보인다”며 달콤한 말로 끊임없이 속삭이던 남자는 어느 날 “결혼하자”고 청혼까지 했다.

에렐 씨와 신뢰관계가 형성됐다고 착각한 이 남성은 서서히 극단주의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은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이며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맞서 싸우기 위해 프랑스를 떠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리비아 등에서 게릴라 전사로 활동해 왔다고 자랑했다. 그는 “포로들을 고문하고, 참수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자신이 직접 참수한 머리를 들고 있는 사진을 에렐 씨의 스마트폰에 전송하기도 했다.

“IS 신병들은 오전 아랍어 수업, 오후 사격 훈련을 하며 2주 훈련이 끝나면 어떤 전선에서도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들은 미래의 영웅”이라며 IS에 대한 홍보도 잊지 않았다. 에렐 씨는 “시리아를 이상향으로 묘사하는 홍보 비디오는 너무나 잘 만들었다. 그들의 훈련 모습 영상을 보다 보면 마치 컴퓨터게임처럼 청소년들을 빠져들게 할 만한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한 달간의 인터넷 잠입취재를 마치고 에렐 씨는 남성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위험은 그 다음부터 시작됐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수많은 살해 위협이 가해지기 시작한 것. 유튜브에는 IS가 그녀에게 사형 ‘파트와’(이슬람 율법 해석)를 내리는 동영상도 떠돌았다. 또 화상 통화하는 장면도 공개됐다. 이 장면 아래에는 “이 여자를 강간하고 돌로 쳐서 고통스럽게 죽여라”라는 아랍어 자막이 붙기도 했다.

에렐 씨는 결국 전화번호와 이름을 바꾸고,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친척들 집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17일 프랑스 ‘카날 플뤼스’ 방송에 얼굴을 가린 채 출연한 에렐 씨는 “살해 위협을 받고 있지만 IS의 실체를 증언하기 위한 내 선택에 대해선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