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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흔들 계층-세대갈등… ‘일자리 복지’로 풀자

입력 | 2015-01-22 03:00:00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제2심포지엄: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
인촌기념회-동아일보-채널A-고려대 공동주최

“한국사회 갈등 폐해 최대 246兆”




《 한국 사회에서 갈등으로 인한 폐해는 최소 82조 원에서 최대 246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제고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진단이 쏟아졌다.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 채널A, 고려대가 20일 고려대 경영관에서 공동 주최한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두 번째 심포지엄에서는 커지는 계층 갈등과 세대 갈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  

20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경영대 LG-POSCO관에서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를 주제로 한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두 번째 심포지엄이 이태수 인제대 석좌교수의 사회로 진행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석학들의 5대 제언

① 한국사회 흔들 계층-세대갈등… ‘일자리 복지’로 풀자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우리 사회의 주요 갈등이 이념인 것처럼 보이지만 계층 간 갈등과 세대 간 갈등이 더 심각한 불화의 소지를 안고 있으며 그 원인은 근본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라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복지정책을 강화해야 하지만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복지비용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정교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제언이 쏟아졌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는 “복지 지출이 클수록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대응할 가능성이 증가돼 빈곤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며 “다만 재정위기를 경험한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와 성공적으로 재정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국가를 가른 차이는 어떻게 복지비용을 지출했느냐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남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북유럽 국가들 못지않은 복지 관련 지출을 했지만 전통적인 사회적 위험 대비책인 의료보험과 연금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반면 북유럽 국가들은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노동시장 부분에 효율적으로 예산을 지출해 위기를 넘겼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젊은이들과 빈곤한 퇴직자들을 잠재적 갈등 집단으로 보고 이들을 위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는 “젊은이들은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30대 중반까지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은퇴를 막 했거나 앞둔 연령층도 앞선 세대의 퇴직자들만큼 물질적 안정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은 젊은이건 고령층이건 모두 고학력자들로 빈곤을 예민하게 느끼고 표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계층 갈등과 세대 갈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통해 계층 갈등과 세대 갈등이 융합될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갈등요소가 될 것”이라며 ‘이들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정당조차 없는’ 현실을 우려했다.

비관론은 이르다는 주장도 나왔다. 장훈 중앙대 교수는 “지난 수년 사이 계층 갈등의 조정과 통합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들이 입안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현행 복지정책에 대해서 세부적으로는 여러 비판이 제기될 수 있지만, 큰 흐름에서 보면 진보뿐 아니라 보수도 계층 갈등을 흡수하는 복지정책의 큰 길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② ‘고인 물’ 양당체제 깰 선거제도 개혁을

정치가 갈등 조정 기능을 회복하려면 양대 정당 체계를 깨고 새로운 경쟁자가 유입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국회가 갈등 조정 기능을 잃어버린 것은 수십 년간 양당 체계가 이어지며 제대로 된 정치 경쟁이 실종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주도하던 휴대전화 시장이 삼성과 애플 같은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으로 급속한 혁신을 이룬 것처럼, 고여 있는 정당정치에 새로운 ‘돌멩이’(정당)를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결국 정치의 경쟁성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새로운 경쟁자가 들어오기 쉬운 구조로 선거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노 연세대 교수는 “우리나라 양대 정당은 1, 2등이 보장된 편한 정치를 해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국민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 외에는 없었다. 선거 마지막에 보면 대북정책 빼고는 두 정당의 공약이 거의 비슷하다. 그러면서도 틀은 진보 보수로 짜왔다”고 지적했다.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국회선진화법은 합의라는 미명하에 2등을 해도 1등과 다름없는 의회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국회가 갈등으로 고착 상태에 빠질 때 스스로 해산해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는 과감한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③ 공직사회 투명성 높여 정부권위 찾자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간 가장 두드러진 사회현상 중 하나는 공적 신뢰의 하락이며, 권위주의를 청산했지만 정부의 ‘권위’도 실종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운동선수(국민)가 심판(정부)의 공정성을 믿지 못하는 상태가 돼 사회적 갈등 해소가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는 “한국 사회의 일반적 신뢰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지만 공적기관에 대한 신뢰 수준은 더 심각하다”며 “특히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는 “정부와 집권층이 투명성에 기반을 둔 도덕적 우위를 갖지 못한다면 법치주의도 준법정신도 정착되기 어렵다. 공직자의 도덕성을 규율하는 소위 ‘김영란법’이 표류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투명성과 제도적 정당성을 획기적으로 증진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는 공직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내부고발자 보호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현행 공익신고자보호법이 내부고발자를 기존 조직 내에서 보호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현실적으로 기존 조직에서 계속 일하기 힘든 만큼 대체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고발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④ 갈등 중재할 시민 배심원제 활용해야

시민이 직접 사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결 절차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준 연세대 교수는 “갈등 해소 역량은 국가 혹은 정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민간 혹은 시민사회에도 절실히 필요하다”며 “시민사회가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면 갈등이 정치화되고 국가의 개입이 요구돼 갈등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는 시민배심원제의 적극적 활용을 제안했다. 시민배심원제는 시민위원들이 갈등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평결을 내리는 제도다. 이 교수는 “평결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 하더라도 실제 많은 사례에서 갈등 당사자들에 의해 수용되고 있다”며 “갈등 당사자가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중재자로 나설 때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은재호 국민대통합위원회 국장은 소송 이외의 방식으로 갈등을 중재하는 대체적 분쟁해결제도(ADR)를 대안으로 봤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도 정부 간 분쟁이나 상사 분쟁, 언론 분쟁을 해결하는 데 사용되고 있지만 성과가 미미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은 국장은 “숙련된 전문가를 양성하고 근거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⑤ 현장서 문제 풀게 지방자치권 강화를

중앙정치 차원에서만 자꾸 갈등을 풀려고 생각하지 말고 지방자치 차원에서 새로운 갈등 해결의 묘책을 찾아야 한다는 논의도 주목된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지방의 갈등이 중앙정치의 갈등이 되는 시대”라고 지적하면서 “지방의 문제도 중앙으로 와야 해결된다는 인식 때문에 모든 갈등이 전국 수준의 갈등으로 커진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그동안 지방행정은 있었지만 지방정치는 없었다”며 “최소한 지방선거에서라도 지역 정당을 허용하는 쪽으로 정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는 “삶의 현장에서 자치를 활성화하는 것이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며 “공존과 화합을 추구하는 규범을 키우는 촉매로서 자치의 기회가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는 “갈등해소 기제에 시민참여를 용이하게 하려면 참여비용을 낮추는 것 못지않게 그런 기제가 지역사회에 가깝게 운영되도록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제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황인찬 hic@donga.com·최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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