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추억 2: 엄마는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이 세상 누구보다 엄살과 호들갑을 싫어했다. 어쩌면 그런 성격 때문에 항상 차갑게 느껴졌고 엄마 앞에서 긴장을 가져야 했다. 1970년 우리 나이로 마흔 살에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됐다는 소식을 듣고도 흥분하거나 지나친 기쁨을 표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했을 뿐이다. 당연히 올 것이 왔다는 오만함 같은 것이었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의 4주기를 맞아 맏딸 호원숙 씨(61)가 펴낸 산문집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에 담긴 내용이다. 수필가인 딸은 가족사의 소소한 장면을 하나하나 불러내 엄마의 내밀한 삶과 문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다정한 엄마와 대찬 작가는 어떻게 하나로 합칠 수 있었을까. 엄마는 글 쓴다는 이유로 밥상을 소홀히 하는 법도, 오래 집을 비우는 일도 없었다. 노망이 든 할머니와 아픈 아버지 수발, 해마다 돌아오는 자식들 입시 등 일상의 노역을 회피하지 않았다. 엄마로서의 삶을, 죄다 글쓰기의 노역으로 풀어냈기에 한국 문학사의 보물인 작가 박완서가 존재할 수 있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