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살며 가슴 떨리던 순간들을 꼽는다면 그 중 하나가 ‘군 훈련소 점호’가 아닐까 한다. 내무반을 구석까지 청소하고 손이 벨 정도로 모포의 ‘각’을 잡아놓고도 가슴을 졸인다. 교관의 눈썰미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점호는 제대한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 여자친구의 휴대폰 점호도 만만치 않다.
“휴대폰 줘봐.”
다른 여성의 흔적이 발견되면 누구며 무슨 일로 연락했는지 따지다가 싸움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시빗거리가 될만한 내용을 자체검열로 지우기도 하는데 그게 또 다른 다툼의 빌미가 된다. 훈련소 교관을 능가하는 눈썰미다.
휴대폰 점호는 당하는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다. 왜 의심을 받아야 하는지 물어보면 “그냥 심심해서 보는 것일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다고 안 보여주면 더 복잡한 일이 일어난다.
의심보다는 ‘심심해서’ 쪽이 맞을 것이다. 남성은 심심하면 웹툰을 보거나 게임을 하지만 여성은 남의 일상을 훑어본다. 그들의 ‘심심함’은 ‘호기심’과 맞닿아 있다. 뭔가를 캐내려는 의도보다는 남자친구의 일상이 어떤지 그냥 궁금한 것이다. 그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런 궁금증은 ‘영역 확인’의 속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 남자의 일상을 수시로 파악해 여러 관계들 속에서 자신이 여전히 첫 번째인지 끝없이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반복해서 순찰을 돌고 새로운 인물(특히 여성)이 등장할 경우 경계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군 시절의 철책 경계와도 비슷한 여성 특유의 본능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그들이 쓸데없이 의심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여자친구나 아내가 “별 것 없다”면서도 굳이 휴대폰을 잠그고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그래서 더 궁금해질 것이다.
각자의 사생활도 그렇지만 의심을 부르지 않는 소통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왜 나를 못 믿느냐”고 따지기에 앞서 솔직하게 묻고 답하기로 신뢰를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게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