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탑-가람 건축에 불상-경전까지… 독자적 불교문화 신라-倭에 전파
일본 나라 현에 있는 호류사 5층 목탑(오른쪽)은 백제 정림사지 5층 석탑(왼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단·임영애 경주대 교수 제공
백제는 중국 불교를 그대로 주변에 전달만 한 게 아니라 자기 식으로 소화한 뒤 전파했다. 그래서 신라, 가야, 왜의 불교문화에서는 백제의 색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백제에서 시작해 통일신라로 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석탑 문화다. 중국에서 들여온 목탑은 내구성이 떨어지고 화재에 약한 단점이 있었다. 이에 백제 무왕은 서기 639년 목탑 양식을 돌로 구현하는 ‘석탑’을 만들었으니 동양 최대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바로 그것이다.
돌에 섬세한 목탑 양식을 구현하는 게 백제로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비 천도를 계기로 건축, 토목 기술을 갈고닦은 데다 정교한 석실 무덤을 조성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제 석탑은 이후 균형미와 비례미를 갖춘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에서 절정을 이룬다.
무엇보다 백제 불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은 왜다. 백제 성왕은 552년 왜에 사신을 파견해 불상과 불교 장식품, 경론 등을 보냈다. 왜가 처음 접한 불교였다. 이후 백제는 불교 경전을 가르칠 승려들과 불상 제조 기술자, 불화 화공, 사찰 건립 전문가인 조사공, 기와 제작 전문가인 와박사, 탑을 만드는 노반박사 등을 파견했다. 이들은 596년 일본 최초 사찰인 ‘아스카(飛鳥)사’ 창건 때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가람 배치(사찰 중심부를 이루는 건물들을 배치하는 방법)는 시대와 종파에 따라 여러 형태를 띠는데 일본에서는 아스카사 창건 이후 한 개의 탑과 한 개의 대웅전을 세우는 백제식 가람 배치가 계속 유행하게 된다. 또 기와를 수평으로 쌓거나 합장 식으로 쌓는 ‘와적기단’은 백제가 창안한 것인데 ‘아노(穴太)’ 폐사(廢寺) 등 여러 일본 사찰에서도 볼 수 있다. 일본 나라 현의 오랜 사찰인 호류(法隆)사 5층 목탑은 백제의 정림사지 5층 석탑과 매우 흡사하다. 호류사의 백제관음상은 백제 기술자가 만든 것인데 프랑스의 지성 앙드레 말로가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이라고 극찬했다.
백제는 중국에서 받아들인 불교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불교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무령왕은 말년에 승려 겸익을 인도로 유학 보냈는데 겸익은 526년(성왕 4년) 범어로 된 불경을 가지고 백제로 돌아온다. 성왕은 그에게 번역과 주석을 맡겨 백제 신율(백제식 계율)을 새로 만들었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번역한 경전으로만 공부했지만 백제 신율을 계기로 백제식으로 이해하고 해석한 경전을 갖게 된 것이다. 중국을 통하지 않고 인도에 직접 승려를 파견한 것은 백제의 폭넓은 국제적 안목을 보여 준다. 자신만의 색깔을 더해 폭넓게 퍼져 나간 백제 불교는 오늘날까지도 동아시아가 동일한 불교문화권을 형성하는 밑받침이 됐다.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