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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안전서장 12명 발령 즉시 바다에 첨벙

입력 | 2015-01-26 03:00:00

“조직 해체 자괴감 컸지만… 무엇보다 세월호 유족 보기가 죄송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무력감에 빠져있을 수 없지 않은가”






24일 전남 여수시 해양경비안전교육원에 설치된 충혼탑을 찾아 순직 경찰관의 흉상을 참배한 전국 해경안전서장들(왼쪽 사진). 25일 여수 앞바다에서 실시된 유람선 침몰 사고 가상훈련에 참가한 신임 서장들이 승객을 구조하기 위해 밧줄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 여수=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해경, 여기는 승객 100명이 탑승한 파라다이스호. 본선 침몰 중이니 빨리 구조 바랍니다.”

“30분이면 경비함이 도착합니다. 모든 승객에게 구명조끼를 착용시켜 퇴선 준비하세요.”

25일 오후 1시 반경 전남 여수시 오동도에서 동북쪽으로 약 4km 떨어진 해상에서 유람선이 침몰한다는 신고가 여수해양경비안전서 상황실에 접수됐다. 김자곤 상황실장(55·경위)은 사고 해상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을 순찰하던 500t급 경비함인 517함에 긴급구조 명령을 내렸다. 517함은 엔진 출력을 높여 최대 속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517함 갑판에는 구조대원 복장에 구명튜브와 밧줄을 든 40, 50대의 중장년 경찰관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해경안전본부에 근무하다가 23일 전국 12개 해경안전서장(옛 해양경찰서장)으로 발령이 난 총경급 간부 12명.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 참사 이전에는 ‘해경의 꽃’으로 불리는 서장으로 발령이 나면 보통 2, 3일은 이임 인사를 하러 다니거나 동료들과 회식을 하면서 축하를 받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들은 발령 다음 날인 24일부터 여수해경안전교육원에 소집돼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채 특별교육을 받아야 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온 국민에게 질타를 받았던 ‘부실 구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교육 첫날에는 각종 해상 사고에 따른 상황 대응 매뉴얼을 교육받았다. 이틀째인 25일에는 해상에서 유람선이 침몰했다는 신고가 접수됐을 경우를 대비한 가상 구조훈련에 나섰다.

“여러분이 잠시라도 멈칫거리면 승객들의 생명을 살릴 골든타임이 날아갑니다. 신속하게 유람선에 올라 승객들을 구조하세요.”

30분 뒤 침몰 사고를 가장한 유람선에 517함이 도착하자 이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훈련교관을 맡은 최재평 훈련과장(58·총경)의 명령에 따라 이들은 유람선 선미에 밧줄 사다리를 걸쳐 놓고 올라가 승객과 선원 구조에 나섰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일부 서장들은 1m가 넘는 파도에 사다리가 출렁거리는 통에 유람선에 오르지 못해 쩔쩔맸다. 또 총경으로 승진한 뒤 해상에서 처음으로 훈련을 받다 보니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유람선에 탄 승객을 모두 517함으로 태우는 구조훈련이 끝나자 이번에는 물에 빠진 익수자 구조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에 빠진 승객을 구조하기 위해 구명뗏목을 편 뒤 이들은 모두 유람선에서 차가운 바다로 뛰어들었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젖은 몸을 말리던 김영구 완도해경안전서장(54)은 “막상 바다에 뛰어들려니 겁이 덜컥 났지만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 위해 훈련에 참가했다”며 “서장으로 취임하면 경비함정 요원들의 해상구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날 저녁식사를 한 뒤에는 지난해 발생한 각종 해상 사고의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이 벌어졌다. 또 이들이 근무할 해경안전서가 담당하는 해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하는 각오 등을 밝히는 상황대응계획서를 작성했다. 여인태 여수해경안전서장(50)은 계획서 말미에 이렇게 썼다.

“지난해 조직(해경)이 해체돼 겪은 자괴감도 컸지만 무엇보다 세월호 유족과 국민들 보기가 죄송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패배주의와 무력감에 빠져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올해는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 여수 해상에서 선박 사고가 접수되면 그 배에 내 가족이 타고 있다는 생각으로 신속하게 달려가 구조할 것이다.”

이들은 27일 취임해 1년 동안 해경안전서를 지휘하게 된다.

517함(여수)=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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