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기자의 눈에 비친 평양
지난해 말 평양을 방문한 스위스의 크리스토프 기센 기자(사진)는 최근 북한의 모습을 한마디로 이렇게 전했다. 그의 평양 방문기는 21일자 스위스 일간지 타게스안차이거에 실렸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타임캡슐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던 북한은 스위스 기자의 눈에선 분명 변하고 있었다.
우선 스포츠를 좋아하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성향 탓인지 스포츠에 대한 열기가 높았다. 기센 기자가 방문한 곳은 평양 미림승마구락부. 평일 오전에도 값비싼 승마 헬멧을 쓰고 러시아산 명마를 타는 여성과 아이들이 보였다고 한다. 1시간 이용료는 외국인 35달러(약 3만5000원), 내국인 5달러(약 5000원). 기센 기자는 “이용료는 북한 노동자의 한 달 치 급여”라고 전했다.
‘종종 군사퍼레이드가 펼쳐지는 김일성광장에는 유럽 지식인들의 회합 장소인 ‘빈 카페’를 떠오르게 하는 가게들까지 들어섰다. 2.75유로(약 3300원)를 내면 케이크나 에스프레소 커피, 레몬주스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는 요리사가 즉석에서 125g의 면을 삶아 스파게티를 만든다.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코카콜라와 캔음료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기센 기자는 김 위원장이 ‘권력의 딜레마’에 빠져있음이 느껴졌다고 했다.
‘이미 많은 북한 사람이 북한과 남한의 격차를 잘 알고 있다. 중국에서 밀수입된 DVD와 USB로 남한의 TV 드라마를 본다. 더 이상 북한이 노동자의 천국이라고 선전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김 위원장이 35년 전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이 추진했던 경제 개방을 추진할 수도 없다. 중국의 번영은 쉽게 얻어진 게 아니다. 김 위원장이 묘책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게다가 아버지, 할아버지와의 차별화까지 추진해야 한다.’
결국 김정은이 선택한 것은 정치 엘리트들이 부유해지도록 허락하는 ‘거래’였다는 게 기센 기자의 생각이다. 수영장 승마장 유원지 등을 지은 것도 모두 부유층에 대한 배려로 보인다는 것이다.
‘신흥부자들은 아이들과 함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스마트폰으로 통화한다. 슈퍼마켓에서는 달러와 유로, 위안으로 화장품, 초콜릿, 쇠고기 등을 살 수 있다. 인터넷만큼은 매우 제한된다…현재 북한의 모습이 김 씨 일가에게만 권력이 집중된 독재 체제에서 신흥부자들에게도 일정 부분 권력을 나눠 주는 과두제와 비슷한 체제로 변모하고 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