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매년 5월경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특별전 ‘모뉘망타(Monumenta)’는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전시다. 매년 대표적 현대작가를 선정하고 그랑팔레라는 근사한 건축물 전체를 활용해 개인전을 열 기회를 제공한다. 그랑팔레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은 역사적 건축물로, 유리와 철 골조로 이뤄져 자연광이 간접적으로 들어오는 내부가 특히 아름답다.
‘모뉘망타’전의 4회째 영광의 주인공이 된 인도 출신의 영국 작가 애니시 커푸어는 놀라운 발상의 전환을 선보였다. 그의 건축설치 ‘리바이어던(Leviathan)’(2013년·그림)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수백 m의 긴 행렬을 거쳐 마치 거대한 자궁에 들어가듯 선정적인 핏빛 공(空)의 세계 속에 덩그러니 서게 되는 관람자. 작업에 대한 각자의 느낌은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다. 빨간 핏빛에 대한 시각적 반응과 함께 텅 빈 공간은 온몸으로 스며들며 미미한 인간 존재를 압도한다.
‘리바이어던’이란 작품의 제목은 성경에 나오는 강력한 힘의 바다괴물과 토머스 홉스의 책에서 상징하는 절대적 국가권력에 그 어원을 두었다. 압도적인 거대 권력 앞에 무력한 인간의 공포와 심리적 공허를 커푸어의 작업에서 체험한다.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미술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