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손에 자라니 결국 무리서 왕따”

어미가 양육을 포기한 새끼를 한곳에 모아 기르는 서울대공원 ‘인공포육장’(위쪽 사진)에서 아기 재규어가 사육사 품에 안겨 우유를 먹는 과거의 모습. 하지만 어미-새끼 간 소통 강화와 동물복지 증진을 위해 과감히 인공포육장을 폐쇄한 뒤 만든 ‘종보전교육관’(아래쪽 사진)에서 국내 토종동물 종 보전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있다. 서울대공원 제공
광복이는 태어나자마자 엄마 갑순이(18)에게서 버림받았다. 출산 뒤 반나절이 넘도록 엄마 품에 가지도 못한 광복이는 ‘인공포육장’으로 옮겨졌다. 젖병을 들고 어리광을 부리는 광복이를 보기 위해 매일 수많은 관람객이 인공포육장 앞으로 몰렸다. 이때만 해도 사육사들은 광복이가 영원히 행복하게 살 줄 알았다.
문제는 5년이 지나 광복이를 어미 무리로 옮기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다른 침팬지도 아닌 어미 갑순이가 광복이를 내쳤다. 갑순이는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광복이에게 송곳니를 드러내고 침을 뱉었다. 전형적인 ‘공격 신호’였다. 어미로부터 두 번째 버림을 받은 광복이는 결국 유인원관 사육사들과 함께 살고 있다. 광복이가 언제 다시 무리로 돌아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인기가 높았던 인공포육장이 지난해 12월 초 문을 닫았다. 광복이처럼 인공포육장에서 자란 뒤 동료와 어울리지 못하거나 ‘사고뭉치’로 자라나는 동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늑대 코요테 등 갯과 육식동물이나 침팬지 오랑우탄 등 유인원 사이에서 인공포육장 출신 동물의 ‘왕따’ 문제가 연이어 발생했다. 어경연 서울대공원 동물연구실장은 “광복이처럼 사람 손에서 자란 새끼와 어미 사이의 소통 문제로 많은 동물원이 골치를 앓고 있다”며 “사람의 손을 많이 탈 수밖에 없는 집단적인 인공포육장은 아예 없애는 게 낫다고 결론 내렸다”고 설명했다.
동물원을 단순한 놀이 공간이 아니라 ‘종 보전’ 중심지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서울대공원의 장기 계획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새끼를 길러 ‘동물 복지’를 높이겠다는 것. 현재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어미가 새끼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 해당 동물관의 사육사들이 개별적으로 보살피고 있다. 유인원관 우경미 사육사(35·여)는 “버림받은 새끼라도 어미와 철창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공간에서 냄새와 언어를 익히며 생활하고 있다”며 “어느 정도 자란 뒤 합사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공포육장 자리에는 얼마 전 ‘종 보전 교육관’이 들어섰다. 이곳에서는 반달가슴곰 여우 삵 등 토종 야생동물의 종 보전 사업을 홍보하고 있다. 슬로로리스(동남아시아산 원숭이), 중국산 남생이 등 밀수입 과정에서 적발된 외국 야생동물도 보호 중이다. 노정래 서울대공원 동물원장은 “단순히 인기나 수익만 생각하면 인공포육장을 그대로 두는 것이 훨씬 낫다”며 “그러나 종 보전과 동물 복지 증진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를 위해 더 늦기 전에 나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