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요충지 코바니 탈환
쿠르드족 민병대를 주축으로 한 국제동맹군이 26일 시리아 북부 전략 요충지 코바니의 도심에서 IS 병력을 완전히 몰아냈다. 131일 동안 1500명이 넘는 전사자가 발생한 치열한 교전 끝에 얻어 낸 ‘값진 승리’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발호한 IS를 장기전투 끝에 격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S의 공격으로 코바니에서 살던 쿠르드 주민 4만5000명은 터키로 피란을 떠났다. 쿠르드계 터키 청년 1800여 명은 위기에 처한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를 돕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
10월 2일 코바니 주변 마을 354곳 중 350곳을 장악한 IS가 시내 진입을 시도하면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IS 측은 하루 최다인 57명이 전사했다. 쿠르드 여성 전사는 폭탄을 안고 적진에 뛰어들었다. 10월 4일까지 코바니 주민 거의 전부가 터키로 넘어갔고 이날 마지막 외신기자도 코바니를 떠났다. 이때부터 건물 하나, 언덕 하나를 두고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 시가전의 결정적 순간들
10월 10일 코바니 절반이 IS의 수중에 떨어지면서 수비대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IS의 탱크가 코바니 시내를 휘젓는 가운데 YPG 사령부까지 점령당했다. 수비대는 서쪽 외곽의 톨세어 언덕으로 후퇴했다. 이곳도 이틀 전까지 IS 수중에 있었으나 미군의 공습 덕분에 되찾았다. 톨세어 언덕까지 IS가 장악하고 있었다면 코바니 방어 자체가 붕괴됐을 수 있었다.
IS도 점점 지쳐 갔다. 미군 주도의 연합군 공습에 보급로도 끊겼다. 올해 1월 2일에는 코바니 전투를 지휘하던 IS의 세이크 알 나지 사령관이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를 계기로 수비대는 총반격을 개시했다. 25일 IS는 마지막 예비군 140명을 투입했다. 대부분이 18세 미만 소년이었다. 전세는 바뀌지 않았다. 이날 IS 대원 41명이 전사했다.
○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
전략적 요충지인 코바니는 양측 모두에 자존심이 걸린 상징적 도시였다. 국제동맹군은 이곳에서 IS의 불패 신화를 깨려 했고, IS는 파죽지세의 기세가 깨지는 걸 원치 않았다. 이런 점에서 치열했던 코바니 시가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과 히틀러의 군대가 혈투를 벌였던 스탈린그라드 방어전을 연상시킨다.
터키로 건너간 코바니 주민들은 매일 고향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 YPG를 응원했다. 이들은 자기 집이 미군 공습에 날아가도 박수를 쳤다. 반면 IS가 공격할 때면 불안한 표정으로 변했다. 코바니 전투 패배로 IS가 수세에 몰릴지도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