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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식도락]모호한 번짐, 혼돈의 식감

입력 | 2015-01-28 03:00:00

<13>pkm갤러리 신민주 전
파브로의 꽈뜨로 프로마쥬 피자




신민주의 아크릴화 ‘불확정적 여백 14017’(위 사진)과 파브로의 꽈뜨로 프로마쥬 피자.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서울 북촌(종로구 재동, 가회동, 삼청동 일대)은 정체가 모호한 동네다. 2001년 시작한 ‘한옥 가꾸기’ 지원 정책 이후 신축 또는 개보수 한옥이 줄줄이 들어섰지만 예스러운 정취는 느끼기 힘들다. 멀끔한 기와지붕과 담벼락 틈틈이 국적불명 상업공간이 흩뿌려져 생장했다.

조정구 구가도시건축 대표(49)는 2000년대 초부터 이곳에서 한옥 수십 채를 개조하거나 새로 지었다. 가회동 화덕피자 전문점 ‘파브로’는 발로 뛰어 체득한 도시한옥 공간의 재해석을 추구하는 이 ‘북촌 건축가’의 단골집이다. 1960년대 지은 한옥을 매입해 상업공간으로 영리하게 뜯어고친 흔적이 구석구석 흥미롭다.

공간을 재구성한 주체는 건축가가 아니라 이 가게 주인 이재성 사장(47)이다. 상호 파브로(fabbro)는 ‘대장장이’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공부한 이 사장은 2002년 삼청동에 공방을 낸 뒤 그럭저럭 일감 아쉬운 줄 모르고 지낸 디자이너였다. 가게 안팎을 채운 금속제 소품 대부분은 그가 불로 달궈 두들겨 만든 작품이다.

“디자이너가 왜 식당을 열었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금속공예와 요리는 전혀 다른 작업이 아닙니다. 용광로든 화덕이든, 둘 다 끈덕지게 불을 들여다보며 최적의 타이밍을 잡아채는 싸움이에요.”

연탄 때던 구들을 통째로 들어낸 자리에는 테이블과 계산대를 놓았다. 대문 옆 별채는 화장실이 되고 뜰이었던 공간에는 화덕과 주방이 들어섰다. 한 가족이 복닥거리며 머물렀던 한옥이 존재했다는 기억은 화장실 유리벽 안쪽에 실험실 동물 표본처럼 끼워 넣은 흙벽 뼈대뿐이다. 골목길에서 간판을 찾아오며 바라본 것은 기와지붕 한옥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와 만난 것은 북촌만큼 정체가 불분명한 어떤 공간감이다.

치즈를 듬뿍 얹은 ‘꽈뜨로 프로마쥬 피자’를 주문했다. 도(dough)가 쫄깃하고 곁들여 나온 야채는 눅눅하지 않아 기분 좋게 씹힌다. 이 사장은 이왕 시작한 화덕 피자를 제대로 만들고 싶어 본고장인 이탈리아 나폴리를 여러 차례 찾았다고 했다. 결코 맛없다고 물리치기 어렵지만 다시 찾아와 앉아 먹게 될까. 자신 없는 식감이다.

한옥과 양옥 사이 어디쯤을 절충한 듯한 집들로 채워진 골목을 5분여쯤 걸어간 곳에 pkm갤러리가 있다. 2월 10일까지 개인전을 여는 신민주 작가의 연작 주제는 ‘불확정적 여백’이다. 캔버스에 검정과 흰색 물감을 치덕치덕 바르듯 올린 뒤 밀대로 덜어내 번짐 효과를 표현했다. 두껍게 바른 아크릴 물감이 흘러내린 자국 사이로 맨 처음 칠한 갈색 또는 청색 톤의 흔적이 희미하게 올라와 있다.

무엇을 표현한 그림일까. 도록에 적힌 언어는 온통 모호하다. 무엇을 먹고 어떤 기분으로 어떤 공간을 걸어온 걸까. 지금의 북촌 구경은 그런 의문을 남긴다. 음식도 그림도, 동네를 닮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