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하순의 강원 홍천군 시골 마을 전경. 귀촌이든, 귀농이든 전원생활을 하다 보면 대개 권태와 맞닥뜨리게 된다. 박인호 씨 제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지난해 11월 중순 강원도 시골에 소담한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한 D 씨(60). 매일매일 어린아이와 같은 설렘과 기쁨으로 전원의 축복을 노래했지만, 불과 한 달여 만에 그 열기는 확 식었다. 한 뼘 넘게 쌓인 눈을 손수 치워 보니 ‘전원생활은 낭만이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한다.
서울과 강원도를 홀로 오가며 전원생활을 해온 H 씨(56)는 귀촌 4년 차다. 이태째부터 시골을 찾는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더니 이번 겨울엔 아예 발길을 끊었다. 그의 고백이다.
이처럼 전원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일정 기간마다 반복해서 찾아오는 ‘권태’라는 이름의 불청객과 맞닥뜨리게 된다. 정도의 차가 있을 뿐 피해 가긴 거의 어렵다. 전원생활 1년 차는 ‘낭만’이지만 2년 차는 ‘실망’이요, 3년 차는 ‘절망’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주변을 보면 전원생활의 권태는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야 하는 귀농인보다는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춰 전원생활 자체를 즐길 여력이 더 있는 귀촌인들에게 오히려 자주 나타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D 씨와 H 씨의 사례에서 보듯 전원생활 초기에는 농촌과 자연의 모든 것이 신비하고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느낌은 반감되고 결국 고독과 무료함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문화·의료시설 부족 등 생활의 불편함도 한몫 거든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귀촌 인구는 2만1501가구로 귀농(1만923가구)의 갑절가량 된다. 2012년에 견줘 36%나 늘었다. 2014년에도 크게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서울 등 도시에 그대로 살면서 주말에만 전원의 세컨드하우스를 찾는 이들을 더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귀촌보다 정도는 덜하다고 해도 귀농 또한 권태의 늪에서 자유롭지만은 않다. 귀농한 지 10년이 넘은 J 씨(56)는 “지난해는 풍작이었지만 가격이 급락해 농사를 망쳤다. 소득에 자신이 없어지니 권태가 밀려오고 한동안 우울증까지 겪었다”고 토로했다.
전원행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자연이 주는 진정한 쉼, 즉 힐링과 안식을 얻기 위함이 아닐까. 이를 제대로 얻고자 한다면 돈 명예 편리함 등 도시의 가치는 점차 내려놓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권태를 불러올 수 있는 전원생활의 단순함과 소박함 불편함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자발적인 가난을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 또한 필요하다.
또 하나. 전원생활의 시작부터 가급적 가족(부부)이 함께하는 게 좋다. 사실 전원의 권태와 우울을 호소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나 홀로 시골행을 강행한 남편들이다. 2013년 귀촌가구의 54.7%, 귀농가구의 57.8%가 나 홀로족(族)이다. 여러 속사정이 있겠지만 혼자만의 전원생활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미 전원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주변에 귀농·귀촌한 이웃과 함께 음악 목공예 산행 등 취미 활동과 품앗이를 함께 하면서 생활의 활력과 전원 상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지역별 귀농·귀촌협의회의 모임이나 각종 행사에 참여해 활동하는 것도 권태가 스스로 비켜 가게 만드는 한 방법이다.
꼭 권태 때문은 아니더라도 행여 전원 정착에 실패할 때를 대비한 ‘출구 전략’ 마련도 필요해 보인다. 출구 전략의 초점은 결국 전원에 소유한 땅과 집의 손쉬운 처분에 맞춰져야 한다. 그러려면 애초 입지를 선택할 때 전원의 쾌적성은 기본이고 고속도로 나들목이나 복선전철역 주변 등 도시 접근성이 좋은 곳을 골라야 한다. 또 집(대지 포함)은 2억 원대 이하로 작지만 건강에 좋고 에너지가 적게 드는 실속 주택이 매매에 유리하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