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배병우에게 ‘스타일’이란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 배병우 씨가 경기 파주 헤이리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의 뒤에 보이는 사진은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독일제 ‘린호프’ 카메라로 찍은 경주 남산의 소나무 사진이다. 파주=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그는 헌 천막으로 만드는 스위스 ‘프라이타크’ 가방과 프랑스 ‘안네 발랑탱’ 안경으로 평소 패션에 색(色)을 입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하는 그의 첫인상이다. 아침에 자전거로 재래시장에 가서 소박한 장을 보고, 동네 단골 술집에서 일본 ‘비잔’ 소주를 마시는 것은 두 번째 인상. 고향인 전남 여수 시장에서 사 온 새우를 지인들에게 불쑥 선물로 건네는 것을 세 번째 인상이라고나 할까. 그의 면모는 알면 알수록 언제나 새로웠다.
그런데 ‘배병우 스타일’의 집결지는 다름 아닌 헤이리 작업실이었다. 각 벽면을 매운 수천 권의 장서(藏書)는 그가 1980년대부터 30여 년을 정진해온 소나무 사진들만큼이나 깊이와 위용이 있었다. 각종 동서양 화보집뿐 아니라 수준 높은 철학서와 역사서들이 빼곡했다. 1990년대 대학국어책과 나무 관련 동화책들도 계단을 따라 옹기종기 쌓여있어 마치 고서점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그는 빨간색 ‘몰스킨’ 다이어리에 일본 ‘이토야’ 샤프로 이렇게 쓴다. “예술가는 타고난 것이지만,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길 여행을 하면 될 수도 있다.” 중국 서화가 동기창의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行萬里路)’론(論)이다.
이날 그는 검은색 중국풍 모직 재킷에 빨간색 목도리와 빨간색 양말로 포인트를 줬다. 이탈리아 ‘보르살리노’ 중절모도 멋스러웠지만, 여러 겹 푸른 천을 덧대 짜깁기한 진바지가 그중 압권이었다. “아, 이 옷이요? (세상을 뜬) 마누라가 30년 전 사 준 옷인데, 동네 수선집 아주머니의 ‘작품’이에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기운 거예요.”
그는 자신의 오래된 독일제 ‘린호프’ 카메라를 들고 동아일보 사진기자 앞에 섰다.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배병우를 평생 먹여 살린 카메라’다. 셔터를 누르는 그의 손이 바로 장인의 손이었다. 몽블랑과 몬테그라파 만년필, 잉크를 묻혀 손 글씨를 쓰는 대나무 펜, 날카롭게 빛나는 일본 명품 ‘슌’의 셰프칼들…. ‘배병우 스타일’은 카메라 뷰파인더를 보는 눈에서 비롯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손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오래된 것들에 고요하게 창조적 숨결을 더하는 미학. 거기에 하나 더하자면 위트.
“물안개가 핀 샹보르 성 호수를 찍으면 동양의 수묵화 같아요. 그런데 성 생활이 아주 불편해. 자러 들어가려면 열쇠를 8개나 따고 들어가야 한다니까. (웃음)”
▽배병우 작가는=
파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