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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들 ‘계급 甲질’… 병영혁신 헛구호

입력 | 2015-01-29 03:00:00

[軍 성범죄-비리 잇단 추문]
진급 미끼로 부하여군 성추행… 청탁 대가 금품수수도 잇따라
일선부대 기강해이로 이어져… 군기문란 적발땐 영구퇴출해야




육군 장성을 비롯한 고급 지휘관들이 연루된 성범죄와 금품비리 사건 등이 잇따르면서 군의 기강 해이와 군기 문란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군기 해체 상황’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육군이 총체적 난국에 봉착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지난해 28사단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을 계기로 육군 참모총장이 교체됐다. 대대적 병영혁신과 내부쇄신을 통해 인권이 보장되는 강군 건설을 국민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각종 성범죄와 비리 사건, 불미스러운 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사실상 ‘공염불’에 그쳤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 육군의 근간을 흔드는 고질적 성범죄, 금품비리

여군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육군 조직문화의 낙후성과 구태의 민낯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10월 창군 이래 처음으로 현역 사단장(소장)이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로 긴급 체포돼 징역 6개월의 실형 선고를 받은 데 이어 최근에는 국방부 장관 부관을 지낸 현역 여단장(대령)이 여군 부사관을 자신의 공관에서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군 관계자는 “육사 출신 고급 지휘관들이 줄줄이 성범죄로 적발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개인의 일탈 차원을 넘어 육군을 뿌리째 흔들고 사기를 갉아먹는 중대 사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육군 내 성범죄는 하루가 멀다 할 정도로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육군 중령이 부하 여군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고, 이달 중순엔 육군 상사가 만취 상태의 여부사관을 성폭행해 긴급 체포되기도 했다.

‘윗물’ ‘아랫물’ 할 것 없이 육군 내 성범죄가 만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성범죄 피해 여군 중 상당수가 군 지휘체계에서 최대 약자인 여부사관이라는 점에서 죄질이 더 나쁘다는 지적이 많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 8월까지 군 내 성폭력 피해자 183명 중 109명(59.5%)이 여군하사로 이들 대부분은 육군 소속이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를 두고 “육군 내 지위(계급)를 남용해 진급과 장기 복무를 미끼로 여부사관에 대한 성적 착취가 구조화됐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금품수수 등 비리부패 사건도 심각한 수준이다. 육군의 모 부대 관사 공사를 수주한 건설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영관급 장교 3명이 최근 군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예비역 간부들의 방산업체 취업 청탁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육군 대령이 구속되기도 했다.

불미스러운 사건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육군 영관장교들이 충남 계룡대 인근 식당에서 가진 폭탄주를 곁들인 회식 자리에서 폭행사건을 일으켜 군내 가혹행위와 폭력 근절 등 병영혁신 약속이 빈말이 아니냐는 빈축을 샀다. 최근 육군 모 부대를 탈영한 강모 일병이 모친을 살해하고 방화한 혐의로 검거돼 충격을 안겼다.

○ 영(令)이 무너진 육군, 전시행정과 인사잡음이 기강 해이로…

일련의 사건사고로 얼룩진 ‘육군 위기’의 본질은 군의 근간이자 생명인 ‘영’이 안서는 것이라는 지적이 군 안팎에서 나온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김요환 육군참모총장(대장) 등 군 수뇌부가 기강해이 사건을 ‘이적행위’로 규정하고 일벌백계와 발본색원을 수없이 외쳤지만 별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군 고위 관계자는 “장관과 총장이 아무리 강조하고 경고해도 일선에선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면서 귓등으로 듣고 흘리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말했다. 군 수뇌부가 해·공군보다 비대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성향의 거대 육군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일선 부대의 신뢰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육군 수뇌부가 말만 앞세운 전시성 행정과 자군 보호 차원에서 엄정한 처벌을 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을 보인 점도 그 요인으로 꼽힌다. 육군의 고질적 인사 구태가 지휘부에 대한 불신과 지휘체계를 흔드는 주범이라는 시각도 있다. 육군 고위 관계자는 “특정(육사) 출신이 요직을 거의 독점하고, 능력보다는 근무 인연에 따라 진급이 좌우되는 인사 적폐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 군기 문란행위자 영구 퇴출 등 일벌백계 실천해야


육군의 위기는 일선 부대의 기강 해이로 이어지고 있다, 강원도 전방부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 중인 김모 소위는 “상관들의 성범죄나 비위 사실을 보고 혀를 차는 부하들을 보면서 지휘를 하기 힘들 정도로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경기도 모 사단의 중대장으로 근무 중인 이모 대위는 “상관들이 저 모양인데 전시에 명령에 따라 목숨을 걸 부하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라고 꼬집었다.

사태 해결의 출발점은 육군 수뇌부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자세로 기강 확립을 위한 내부 개혁과 쇄신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군 관계자는 “성범죄나 비위를 저지른 지휘관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파면이나 계급 강등 등 군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처벌을 해 군에서 영구 퇴출시켜 군령을 바로세우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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