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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손끝의 담배, 아이 눈앞의 흉기

입력 | 2015-01-29 03:00:00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1월의 주제는 ‘배려’]<18>화상 부르는 공포의 길거리 흡연




흡연자들이 2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배려가 없는 길거리 흡연자들은 간접흡연과 담뱃불 화상을 두려워하는 시민들에게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직장인 박모 씨(30)는 24일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울 중구 명동을 찾았다. 약속 장소인 영화관까지 가려면 골목을 지나야 했다. 골목은 폭이 좁아 마주 오는 사람과 스칠 듯했다. 급히 골목을 지나던 박 씨는 왼쪽 손등에 고통을 느꼈다. 마주 오던 흡연자의 담뱃불이 손등에 닿은 것이다. 불붙은 담배의 온도는 500도, 담배를 피우는 순간에는 최대 800도까지 올라간다. 박 씨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지만 흡연자는 못 본 척 유유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박 씨의 손등에는 빨갛게 부은 상처가 남았다.

데이트를 앞두고 예쁜 원피스로 단장한 채 집을 나선 기모 씨(24·여). 서울 노원구의 한 횡단보도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그의 옆으로 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다가왔다. 매캐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잠시 후 남자가 손끝으로 담배를 ‘툭’ 하고 털자 담배 불똥이 기 씨의 원피스로 날아와 손톱만 한 구멍을 냈다. 당황한 기 씨는 보상을 요구했지만 남자는 단칼에 거부했다. “금연 장소도 아닌데 내가 잘못한 게 뭐요?”

배려가 없는 길거리 흡연자는 평소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도 기피 대상이다. 본보 취재팀이 28일 서울 송파구 신천역과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에서 흡연 실태를 30분씩 관찰한 결과 각각 10명과 8명이 보행 중에 담배를 피웠다. 코를 손으로 막아 담배 연기를 차단하거나 흡연자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멀찌감치 떨어져 걷는 시민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길거리 흡연자가 외면받는 이유는 시민들의 ‘간접흡연’과 ‘화상’ 공포 때문이다. 강모 씨(23)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온 악취를 왜 내가 맡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담배 끝에 코로 연결되는 호스를 달아 흡연자가 직접 냄새를 맡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홍관 국제암대학원 국가암관리사업본부장은 “간접흡연이 반복되면 담배 연기 속 독성물질로 인해 심혈관이 좁아지고, 천식과 심장질환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녀와 함께 외출한 학부모들은 화상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성인 남성이 담배를 쥔 손을 내리면 담뱃불의 위치가 아이의 얼굴 높이와 비슷하기 때문. 김모 씨(36·여)는 “아이 이마에 흡연자의 담뱃불이 닿은 적이 있다. 혼잡한 거리를 갈 때마다 담뱃불을 피하기 위해 아이를 이리저리 이동시키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조성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길거리에서 침을 뱉는 것은 경범죄다. 그런데 타인의 건강 침해 등 피해가 심각한 길거리 흡연은 규제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길거리 흡연의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알려 흡연자가 자제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길거리 흡연을 막기 위해서는 흡연자 스스로 의식을 바꿔야 한다. 자신도 언제든 길거리 흡연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다. 간접흡연으로 인한 질병 발생과 화상으로 인한 신체적 피해는 비흡연자뿐만 아니라 거리를 걷는 모든 사람에게 위협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혼잣말이라도 남에게 거북함을 주기 때문에 욕설을 내뱉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내 입에서 나오는 연기라도 남에게 해롭다면 자제하는 게 최소한의 배려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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