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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승려 정신’ 실종에 대한 참회

입력 | 2015-01-30 03:00:00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조계사는 불자들뿐 아니라 국내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전통사찰이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총본산이다. 그러나 1998년엔 머리 깎은 승려들끼리 경내에서 유혈 폭력 사태를 벌이는 모습이 BBC, CNN 등을 통해 전 세계에 비쳤다. 수도자들이 목탁 대신 쇠파이프와 각목을 들고, 돌과 화염병을 투척하며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이 세계인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싶다.

▷종권이라는 잿밥을 차지하려는 싸움이었다. 승려들의 유혈 사태가 이듬해 10월 조계사에서 다시 한번 재연되면서 국민적 불신과 지탄을 자초했다. 그러나 불교계 일각에선 1990년대 치고받으며 싸운 조계종 분규를 ‘차라리 순수하고 순진했던 시절’의 일로 여긴다. 요즘 종단 내 밥그릇 싸움은 더 교묘하고 음습해졌다는 것이다.

▷“중(승려) 정신이 실종됐다.” “지난 50년 동안 불교가 사회를 위해 기여한 게 하나도 없다.” 외부에서 이런 말을 했다면 난리가 났을 터이지만 조계종단 수장인 자승 총무원장의 발언이다. 그제 종단 간부부터 젊은 불자까지 참석한 ‘종단 혁신과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 행사에서 그는 이런 고백도 했다. “어려서 출가해 (절에서 대처승을 몰아내는) 정화한다고 절 뺏으러 다니고 은사 스님 모시고 종단 정치하느라 중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자승 스님은 백양사 승려들의 도박 파문 이후 사실상의 불출마 약속을 뒤집고 2년 전 총무원장 연임에 성공했다.

▷조계종에서는 4년마다 치러지는 총무원장 선거를 중심으로 본사 주지와 종회의원 선거 등 자리다툼을 둘러싼 추문이 끊이지 않는다. 해외원정 도박, 성매수, 성추행 등도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출가자 수는 갈수록 줄어든다. 종단의 자성과 쇄신을 미룰 수 없는 시점이다. “지금 당장은 ‘쇼’로 보일지라도 10년, 20년 후에 추수한다는 심정으로 씨를 뿌려야 한다.” 자승 총무원장의 말이 과연 진심인지 쇼인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