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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즉석식품 얕보지마라… 연구원 11명 중 5명이 셰프 출신

입력 | 2015-01-31 03:00:00

‘현대판 만물상’ 편의점 26년
편의점=컵라면 공식이던 시절… 삼각김밥 전파 탄 뒤 먹거리 혁명
빵 굽고 커피 내려주는 카페형까지… 식품연구소 만들어 메뉴 개발
김밥서 흑미 잡곡버거로 진화… 전문 ‘밥 소믈리에’가 품질 관리




GS리테일 식품연구소 연구원들이 곧 새로 출시할 예정인 햄버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연구소는 햄버거를 비롯해 샌드위치, 김밥, 도시락 등 편의점에서 파는 거의 모든 음식 메뉴를 개발한다. 왼쪽부터 이일갑 강래성 최유라 이순주 연구원.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 지하 1층 GS리테일 식품연구소. GS25에서 판매하는 즉석 식품 메뉴를 개발하는 곳이다. 23일 이곳을 찾았을 때 신제품 도시락에 대한 막바지 실험이 한창이었다. 이순주 연구원은 작은 그릇에 흑미 잡곡밥을 담고 저울에 올렸다. 무게를 잰 후 밥을 조금씩 덜거나 더한 뒤 다시 재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 연구원은 설 연휴에 맞춰 출시할 ‘명절 도시락’에 들어갈 밥의 양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 도시락은 백미가 아닌 흑미를 쓰고 각종 전 등 명절 음식을 넣은 것이 특징이다.

맞은편에서는 강래성 연구원이 밥과 햄버거 속 닭고기를 함께 맛보고 있었다. 다음 달 출시를 앞둔 ‘잡곡밥 버거’다. 빵 대신 밥으로 햄버거를 만든 것이다.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를 겨냥해 잡곡을 사용했다. 연구원들은 실험 중인 음식을 냉장고에 넣은 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는 작업을 반복했다. 편의점 음식들은 대부분 냉장 상태로 운송된다. 소비자는 구매 후 이 음식을 데워 먹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냉장 상태의 음식을 데웠을 때도 본래의 맛을 살릴 수 있는지가 핵심 점검 사항이다.

이 식품연구소는 2013년 1월 문을 열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즉석 식품도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만들었다. 구성원 14명 중 11명이 연구 인력, 이 중 5명이 셰프 출신이다. 이들이 메뉴 하나를 개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주다. 주먹밥 하나를 만들어도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밥은 백미로 할지 잡곡으로 할지, 소스는 매운맛으로 할지 불고기 맛으로 할지 등. 여기에 위생 점검과 시식 후 조리법 수정까지 10주의 시간은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진다. 이곳 사람들의 아침 식사는 언제나 편의점 음식이다. 자신들이 개발한 대로 맛이 나오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 때로는 경쟁사의 제품을 먹으며 동향을 파악한다.



컵라면이 전부였던 곳, 삼각김밥으로 폭발적 인기


지금은 편의점이 연구소까지 따로 두며 다양한 즉석 식품을 개발하지만 과거에는 편의점에서 먹는 음식이라고 해봐야 컵라면이 전부였다. 편의점 초창기에는 그것마저 화제였다. 물값을 내지 않고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곳은 편의점뿐이었기 때문. 포장지에 적힌 값만 내면 즉석에서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주머니가 가벼운 중고교생들이 몰려들었다.

라면만큼 이들을 사로잡은 건 직접 따라 마시는 음료수였다. 500원을 내면 16온스(약 470mL)짜리 컵에 직접 버튼을 눌러 음료를 담아 마실 수 있었다. 이 음료를 무한정 리필할 수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은 한 번만 음료를 따라 와서 계산 후 마셔야 했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음료를 양껏 나눠 마신 뒤 마지막에 음료를 따라 와서 계산하곤 했다. 이 기계가 사라진 줄 아는 이들이 많지만 현재도 세븐일레븐 점포 50여 곳에서 운영 중이다.

1990년대 중반에는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편의점에서 먹었다. 바나나우유도 유독 편의점 매출이 높았다. 편의점 먹거리에 혁명을 일으킨 건 삼각김밥이다. 2001년 세븐일레븐이 삼각김밥 TV 광고를 시작한 후 인기는 상승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2002년 한일 월드컵이다. 거리 응원에 나선 사람들이 허기를 채우고자 편의점을 찾았고 삼각김밥을 싹쓸이해 갔다. 지금도 삼각김밥은 편의점의 대표 음식이다. 그런데 사실 삼각김밥은 편의점들이 처음 생길 때부터 팔았다. 2001년 이전에는 인기가 없었을 뿐이다.



허기 채우는 간식에서 한 끼 식사로…

매년 치솟던 삼각김밥의 인기가 꺾인 건 ‘김밥천국’ 같은 분식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한 줄에 1000원’을 내세우며 저가 김밥을 판매하면서부터다. 삼각김밥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게 됐지만 이때부터 편의점들은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우선 저가 김밥에 대응해 같은 가격(1000원)의 한 줄짜리 김밥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손으로 김밥을 만지지 않고 밀어내 먹을 수 있도록 한 게 주효했다.

이와 함께 도시락이 편의점 매대를 채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단히 비벼 먹는 덮밥류가 많았다. 200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다양한 반찬을 넣은 도시락이 나왔다. 한국인들의 식습관을 고려한 것이다. 도시락의 등장과 함께 편의점 음식은 ‘허기를 채우는 간식’이 아닌 ‘한 끼 식사’로 자리매김했다.

편의점 음식의 진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직접 빵을 구워 주는 편의점이 등장했다. 또한 원두커피를 즉석에서 내려 주는 카페형 편의점도 생겨났다. 1회용 컵에 얼음을 넣고 커피를 부어 먹는 제품도 여름철 인기 메뉴다. 현재 편의점들은 자체 브랜드(PB) 즉석 식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CU(씨유)의 ‘자이언트’ 시리즈, GS25의 ‘위대한’ 시리즈, 세븐일레븐의 ‘더 커진’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 PB 상품들은 떡볶이 핫도그 등으로 경쟁 중이다.

편의점 음식이 양적, 질적으로 진화했음에도 여전히 편견은 있다. 김밥이나 도시락에 중국산 쌀이나 오래된 쌀을 쓸 거라는 의심이 대표적이다. 각 업체들은 “엄선한 햅쌀만을 사용한다”고 입을 모은다. CU는 쌀의 맛과 향, 찰기를 평가하는 ‘밥 소믈리에’ 2명을 고용해 밥 품질 관리를 하고 있다. 밥 소믈리에는 일본 취반협회에서 매년 90명씩 자격을 부여한다. 싼 가격에 맛을 내고, 보관을 쉽게 하기 위해 인공첨가물을 많이 넣을 거라는 생각을 가진 이도 많다. 편의점 업체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신선한 재료로만 맛을 낸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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