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공감백서 맞아, 맞아!]후배들 눈치보는 선배
농담처럼 꾸며 가볍게 말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었다. 탁자 위의 불판에서 삼겹살 기름이 튀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앞자리에 앉은 남자 후배 하나가 멋쩍게 웃어 보였을 뿐 다른 후배들은 묵묵히 젓가락만 놀렸다.
출판업체에 다니는 유모 차장(42)은 부하 직원들과 회식을 할 때마다 팔자에 없는 ‘수다쟁이’ 역할을 맡느라 진땀을 뺀다. 자신마저 입을 다물고 있으면 2시간 남짓한 회식자리가 침묵에 휩싸인다는 것을 잘 알아서다.
○ “나는 투명인간이 아니야”
많은 후배들은 ‘나쁜 상사’를 만나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나쁜 상사’만 없으면 회사생활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배들도 후배들 때문에 직장생활이 힘들긴 마찬가지다. 달리 하소연할 곳이 없고, 아무도 선배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지 않아 참을 뿐이다.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는 박모 팀장(40)은 가끔 자신이 걸어 다니는 얼음덩어리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후배들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걸 느껴서다. 가끔 화장실을 다녀올 때 삼삼오오 모여 있던 후배들이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는 것도 몇 번이나 봤다.
박 팀장은 자신을 좋은 상사라고 생각해 왔다. 작은 것이라도 늘 팀원들과 나누려 노력했고 팀원들을 크게 혼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술자리에서 “너희들 나 없을 때 내 욕 하면서 깔깔거리고 놀지?”라고 농담을 건넸을 때 아무도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던 게 마음에 걸린다. 그는 “회사에서 선배들은 일을 지시하는 존재라서 아무리 사적으로 후배들과 친해지려 해도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진다”며 “후배들이 많아질수록 편하고 좋으면서 일도 잘하는 유능한 선배가 될 수는 없을까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선배들은 어떤 후배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볼까.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5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은 회사 업무시간에 인터넷을 하거나 스마트폰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는 후배들을 ‘꼴불견 후배’로 꼽았다. 인사를 안 하는 후배나 말대꾸 하는 후배,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후배도 ‘뒷목을 잡게’ 만드는 후배의 모습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뺀질대는’ 후배의 모습이 훤히 보이지만 사사건건 이를 지적하는 것도 쉽지 않다.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허모 팀장(41·여)은 최근 입사한 열 살 어린 여직원 때문에 무능한 팀장으로 낙인찍혔다.
허 팀장은 여직원이 회사에 처음 출근한 날 “함께 창고에 가 비품 정리를 하자”고 말했다. 함께 창고에서 일하며 회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 여직원은 “저 무거운 것 못 드는데…”라며 노골적으로 싫다는 의사를 밝혔다. 화가 난 허 팀장이 여직원을 따로 불러 혼내자 여직원은 퇴근하기 전까지 자신의 책상에 엎드려 울기만 했다. 이후 사내에서 무수한 뒷말이 돌기 시작했다. “젊고 예쁜 여직원을 질투한다”는 후배들의 이야기와 “좋게 말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혼을 내냐”는 속 좋은 선배인 척하는 동료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허 팀장은 “혼자 속앓이를 하더라도 후배들에게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면서도 “이게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