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2월의 주제는 ‘약속’]<20>시간 약속 안지키는 사람들
여느 때처럼 휴대전화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든 것이 화근이었다. 한참 뒤 일어나보니 문자메시지 수십 통에 부재중 전화도 세 통이었다. 서둘러 교육 장소에 나가 보니 부하와 다른 부서 직원들 15명이 1시간 30분 가까이 기다리고 있었다. 9시부터 업무가 시작되니 결국 교육은 하지 못했다. 이 씨는 “그들이 일찍 출발한 시간을 포함하면 내가 3시간씩을 허비하게 만든 셈인데, 내가 윗사람이어서 면전에서 욕은 안 먹었지만 눈들이 정말 따갑더라”고 말했다.
○ 약속 지키면 바보?
박모 씨(36)는 지난해 말 겨울휴가로 일본 후쿠오카행 비행기를 타면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박 씨는 “출발 시간이 지났는데도 승무원이 게이트를 닫지 않고 있었다. 뒤늦게 일가족 3명이 미안한 기색도 없이 쑥 들어오는데 손에는 면세점 쇼핑백을 주렁주렁 들고 있었다. 화장품과 술 사느라 아무리 이름을 부르고 방송을 해도 안 탔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들이 짐 정리를 하고 자리에 앉고 난 뒤 예정 시각을 15분 넘겨서야 비행기는 출발했다. 이날 비행기는 만석이어서 최소 300명의 15분씩, 총 4500분을 낭비하게 한 셈이다. 항공사에서는 늦게 탄 탑승객의 불평을 듣지 않기 위해 나름의 배려를 한 것이겠지만 약속을 지킨 다수의 승객을 바보로 만드는 이런 일은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 늦는 것은 습관이다
“월요일이라 차가 많이 밀려서 늦었습니다.” 이런 변명은 대개 지각대장들이 상투적으로 내놓는다. 상사는 이렇게 대꾸한다. “그런 걸 감안해서 더 일찍 출발해야지, 왜 매주 그 모양인가!”
조금만 긴장해서 미리 준비하면 이런 문제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시간 약속을 ‘칼같이’ 지키는 게 빡빡해 보일지 몰라도 습관화하면 어렵지 않다. 이동식 수업을 진행하는 미국 중고교에선 수업 중간 ‘이동시간’을 5분 정도로 제한한 곳이 많다. 이동 거리가 길어도 정해진 수업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지각이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사회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지켜야 하는 시간 약속에 있어서는 ‘화장실이 급했다’는 이유도 통하지 않는다. 미국 보육시설에선 아이를 찾아가는 시간을 정해놓고 이를 1분이라도 어긴 부모에겐 자체적 벌금으로 1달러라도 물리는 곳이 많다. 여성희 이화여대 사범대 교수는 “작은 금액이라도 돈으로 표현해 ‘시간은 서로에게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걸 규칙으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가 배울 수 있는 세상의 규칙이라면, 어른도 할 수 있다. 서로 시간 자산을 지켜주는 것이 세상살이 약속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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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