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100km 울트라 레이스’ 도전기
홍콩 산악지대와 해안 100km를 뛰고 걷는 울트라트레일 러닝에 51개국에서 선수들이 참가했다(왼쪽 사진). 제주와 비슷한 해안과 산악지대로 코스가 짜여졌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도전과 좌절
“홍콩에도 산악마라톤을 할 수 있는 코스가 있어요?”
나지막한 산속 길을 지나자 광활한 ‘하이 아일랜드 저수지’가 시원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레이스 코스는 산을 타고 해안으로 내려와 다시 산으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드넓은 바다를 마주한 조그만 모래 해변과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은 마치 제주 추자도의 올레 길을 마주한 것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팔손이나무 사스레피나무 고사리 등의 자생식물도 제주와 비슷했고 해안 구석에 핀 노란 괭이밥, 제비꽃 등도 정겨웠다. 10km마다 마련된 체크 포인트(CP)에서는 참가 선수들의 통과기록을 확인하고 인원을 점검했다. 여기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물과 간식 등을 제공했다.
레이스 초반에 내리막길을 달리며 평소의 페이스보다 오버한 탓일까. 30km 지점을 지나면서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52km 지점의 다섯 번째 CP에 도착했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웠고 통증 강도는 심해졌다. 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잠을 쫓기 위해 진한 커피를 연거푸 들이켰다. 밤이 깊어지면서 산속의 체감 온도는 0도 내외로 뚝 떨어져 살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냉혹했다.
한 줄기 랜턴 불빛에 의지한 걸음은 시간이 갈수록 느려졌다. 결국 74km 지점에서 코스를 이탈해 일본인 참가자와 함께 시내까지 하산하는 비상 상황이 벌어졌다. 이미 체력은 바닥까지 내려간 상황. 말이 통하지 않는 일본인 참가자와 함께 한참을 서성이다 레이스를 접기로 결정했다. 이번 레이스를 통해 지구력과 근력을 키우는 훈련을 체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완주에는 실패했지만 페이스 조절, 정신력 무장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소득이었다. 또다시 도전에 나설 힘도 얻었다.
○ 제주는 ‘트레일 러닝’ 최적지
홍콩 울트라 레이스는 2011년 시작됐다. 첫 대회에는 250명에 불과했지만 해마다 인기를 끌면서 이번에는 51개국 1800명이 도전장을 냈고 1318명이 완주했다. 중국인 얀룽페이 씨(26)가 9시간 52분 42초로 우승했다. 한국인은 2012년 대회에 5명이 처음으로 참가한 후 지난해 14명, 올해 44명 등으로 늘었다. 정지원 씨(23)는 아버지인 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 정보영 회장과 함께 도전했다. 지원 씨는 “복학을 앞두고 마음을 잡기 위해 아버지에게 도전 의사를 전했다. 레이스 도중에는 후회가 밀려들었으나 완주한 뒤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만감과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비포장 길을 달리고 걷는 울트라트레일 러닝 대회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13년 출범한 세계트레일러닝협회(ITRA)는 지난해부터 ‘울트라트레일 월드투어(UTWT)’를 시작했다. 이번 홍콩 울트라 레이스도 월드 투어의 하나다. 울트라트레일 러너인 박길수 씨(49)는 “자연환경을 몸으로 부닥치며 인간 한계에 도전하고, 때로는 극한 상황을 즐기는 트레일러닝은 세계적인 추세다. 제주는 다양한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어 트레일러닝을 위한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