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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대학강사 시절 알바로 잡은 ‘마이크’가 34년째…

입력 | 2015-02-02 03:00:00

허구연 프로야구 해설위원




책상 위에는 PC 모니터가 4대나 놓여 있었다. 그 주인은 증권이나 정보기술(IT) 전문가는 아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64)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한미일 야구를 동시에 봐야 할 때도 있고 데이터를 모으다 보니 방이 복잡해졌다”며 웃었다.

○ 선수, 감독으로 겪은 시련이 자양분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해설을 해온 허 위원의 장수 비결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서적, 기록집 등 야구 관련 물품으로 가득 찬 20m²의 작은 공간이 이미 대답해 주고 있었다. 다음 달 시범경기 중계와 함께 2015시즌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허 위원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가슴이 설렌다. 올해는 10개 구단 체제가 도입되고 5개 팀의 감독이 바뀌었다. 강정호도 메이저리그에 가세하고…. 할 일이 더 많아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허 위원은 경남중고교 시절 유망주였다. “고 1때인 1967년 동아일보 주최 황금사자기에서 타격왕을 아깝게 놓쳤다. 경남고가 패자전을 통해 경북고를 두 번 꺾고 우승하면서 타석수가 늘어나 타율 1위 자리를 임신근 선배에게 내줬다.” 일찌감치 주전자리를 꿰찼던 그는 고교 시절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 학업에 미련이 많았기에 예비고사를 치러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때도 방망이와 법학서적을 넘나들었다. 졸업 뒤 한일은행에 입단한 뒤 한일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경기 도중 정강이뼈가 부러져 선수 생활을 접었다. 그때 나이 25세였다.

운명처럼 다시 책을 잡은 그는 1978년 고려대 법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경기대 강사로 일하다 동아방송 라디오의 황금사자기 중계에 나섰다. 파트타임으로 시작한 야구 해설이 평생 갈 줄은 그 역시 몰랐다. “교수가 되고 싶었다. 프로 출범으로 TV 해설 제의가 와 한번만 하고 관두려고 했는데….”

해설가로 자리를 굳혀가던 허 위원은 1985년 34세 최연소 사령탑 기록을 세우며 청보 감독이 됐다. 하지만 한 시즌도 끝내지 못한 채 불명예 퇴진했다. 이때 남긴 전적은 8승 23패였다. 1987년부터 3년 동안 롯데 코치로 일했지만 역시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아쉬웠던 과거를 밝히며 굳어졌던 그의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선수 지도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게 해설가로도 결점이었다. 그때 감독과 코치를 하면서 현장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배움의 기회였다. 해설은 경험이 풍부해야 하고 늘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다양한 계층과 야구지식을 지닌 팬들의 욕구를 고르게 충족시킬 수 있다.”

허 위원은 오랜 세월 하일성 씨와 국내 해설위원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다. 그는 하 위원에 대해 “고마운 선배다. 서로 스타일이 달라 도움이 많이 됐다. 내가 후배 해설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개성을 살리라고 한다. 남진 나훈아에 김건모 소녀시대도 있어야 가요계가 사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내 별명은 ‘허프라(허구연+인프라)’

허 위원은 새 승용차를 구입한 지 3년 만에 주행 거리 13만 km를 넘어섰다. 7년째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을 맡으며 야구장 신축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녀서다. 발품을 팔며 공무원들과 접촉한 덕분에 위원장 부임 초기 160곳이었던 국내 야구장이 지난 연말 기준으로 360곳으로 늘었다.

허 위원은 “국내 야구장 시설과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인프라 개선 없이 한국 야구의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 프로야구를, 스포츠 산업을 키워야 한다. 번듯한 야구장을 갖춰야 안정적인 수익구조로 자생력을 키울 수 있다. 어디서든 쉽게 야구장을 접해야 야구 저변도 확대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티볼, 소프트볼 육성에도 소매를 걷어붙인 이유도 야구 활성화 때문이다. 허 위원은 해설할 때 특정 팀을 편애한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야 야구의 인기가 올라간다. 의식적으로 정수빈, 이태양 같은 어린 선수들에 대한 언급을 많이 했을 뿐이다.”

허 위원은 5일 한 달 동안 미국으로 장기 출장을 떠난다. 국내 프로야구단의 스프링 캠프를 찾아 훈련 상황을 점검하고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류현진 추신수 강정호 등도 만날 계획이다. “해설은 늘 생방송이다. 각본 없는 전쟁에서 늘 순간의 실수를 줄이는 싸움을 하고 있다. 철저한 사전 준비는 필수다.” 31세에 처음 마이크 앞에 섰던 허 위원은 어느덧 손녀를 둔 60대 중반의 할아버지가 됐지만 야구를 향한 열정은 늘 새로워 보인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