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 프로야구 해설위원
○ 선수, 감독으로 겪은 시련이 자양분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해설을 해온 허 위원의 장수 비결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서적, 기록집 등 야구 관련 물품으로 가득 찬 20m²의 작은 공간이 이미 대답해 주고 있었다. 다음 달 시범경기 중계와 함께 2015시즌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허 위원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가슴이 설렌다. 올해는 10개 구단 체제가 도입되고 5개 팀의 감독이 바뀌었다. 강정호도 메이저리그에 가세하고…. 할 일이 더 많아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운명처럼 다시 책을 잡은 그는 1978년 고려대 법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경기대 강사로 일하다 동아방송 라디오의 황금사자기 중계에 나섰다. 파트타임으로 시작한 야구 해설이 평생 갈 줄은 그 역시 몰랐다. “교수가 되고 싶었다. 프로 출범으로 TV 해설 제의가 와 한번만 하고 관두려고 했는데….”
해설가로 자리를 굳혀가던 허 위원은 1985년 34세 최연소 사령탑 기록을 세우며 청보 감독이 됐다. 하지만 한 시즌도 끝내지 못한 채 불명예 퇴진했다. 이때 남긴 전적은 8승 23패였다. 1987년부터 3년 동안 롯데 코치로 일했지만 역시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아쉬웠던 과거를 밝히며 굳어졌던 그의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선수 지도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게 해설가로도 결점이었다. 그때 감독과 코치를 하면서 현장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배움의 기회였다. 해설은 경험이 풍부해야 하고 늘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다양한 계층과 야구지식을 지닌 팬들의 욕구를 고르게 충족시킬 수 있다.”
허 위원은 오랜 세월 하일성 씨와 국내 해설위원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다. 그는 하 위원에 대해 “고마운 선배다. 서로 스타일이 달라 도움이 많이 됐다. 내가 후배 해설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개성을 살리라고 한다. 남진 나훈아에 김건모 소녀시대도 있어야 가요계가 사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내 별명은 ‘허프라(허구연+인프라)’
허 위원은 “국내 야구장 시설과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인프라 개선 없이 한국 야구의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 프로야구를, 스포츠 산업을 키워야 한다. 번듯한 야구장을 갖춰야 안정적인 수익구조로 자생력을 키울 수 있다. 어디서든 쉽게 야구장을 접해야 야구 저변도 확대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티볼, 소프트볼 육성에도 소매를 걷어붙인 이유도 야구 활성화 때문이다. 허 위원은 해설할 때 특정 팀을 편애한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야 야구의 인기가 올라간다. 의식적으로 정수빈, 이태양 같은 어린 선수들에 대한 언급을 많이 했을 뿐이다.”
허 위원은 5일 한 달 동안 미국으로 장기 출장을 떠난다. 국내 프로야구단의 스프링 캠프를 찾아 훈련 상황을 점검하고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류현진 추신수 강정호 등도 만날 계획이다. “해설은 늘 생방송이다. 각본 없는 전쟁에서 늘 순간의 실수를 줄이는 싸움을 하고 있다. 철저한 사전 준비는 필수다.” 31세에 처음 마이크 앞에 섰던 허 위원은 어느덧 손녀를 둔 60대 중반의 할아버지가 됐지만 야구를 향한 열정은 늘 새로워 보인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