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 간. 동아일보DB

정동현 셰프
“따로 안 팝니다. 서비스로 나가요.”
“간을 너무 좋아해서 그러는데요, 따로 주문할 수 있나요?”
주인장의 단호한 대답에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 간을 공짜로 많이 먹으면 눈치가 보일 터. 돈 내고 당당하게 많이 먹겠다는 의도인데. 암튼 서로 배려하려는 마음이 훈훈하기도 하여라. 우리는 곱창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서울대 입구 관악초등학교 뒤 언덕에 있는, 아는 사람은 안다는 그곳, 이름도 언밸런스한 ‘신기루 황소곱창’이 목적지다.
나와 간을 먹으러 간 친구는 여대생 시절 간도 크게시리 혼자 곱창집에 가서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오로지 간만 따로 시켜 먹던 강적이었다. ‘요것 봐라’ 하는 눈초리로 주인집 아주머니가 접시에 가득 담아다 준 간을 얌전한 구미호처럼 한 점 한 점 한 시간에 걸쳐 먹었다고 한다. 그녀의 핏빛 무용담을 들으면서 나는 서정주의 귀기 서린 시구가 떠올랐다.
‘보리밭에 달 뜨면/애기 하나 먹고/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간은 육식동물의 적통인 나 같은 놈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좋아한다. 곱창집에 가야만 생간을 먹을 수 있고 기껏해야 순댓집의 돼지 간 정도만 맛볼 수 있는 우리나라에 비해 서구 여러 나라에서 간을 즐기는 방법은 다채롭고 풍성하기까지 하다.
푸아그라
그날 우리가 그런 심정으로 간을 세 종지째 비웠을 때 주인아주머니는 주방에 대고 이렇게 외쳤다.
“간 정말 많이!”
나는 그날 질리게 간을 먹었지만 조만간 다시 갈 것이다. 주인아저씨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사람들은 취해 가고, 고기는 익어 가고, 계산서 금액은 가벼웠으니까. 무엇보다 싱싱한 간의 비릿하고도 고소한 맛이 떠오를 테니 말이다. 게다가 동종 요법에 따르면 너의 간은 나의 간에 좋으니, 애주가로서 꼭 섭취해야 할 부위 아닌가? 간에는 온갖 영양분, 특히 철분과 비타민A가 풍부하다. 조금 괴기스러워 보이겠지만 나는 식물이 아니라 동물, 그것도 육식동물이다. 남의 살을 먹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필자(33)는 영국 고든 램지 요리학교 ‘탕테 마리’에서 유학하고 호주 멜버른 크라운 호텔 등 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정동현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