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며칠 전 30개월 된 아들이 기자에게 말했다. ‘뽀로로’, ‘사탕’ 등 짧은 표현을 주로 구사하던 아들이었는데…. 얼마나 다급했으면 길게 말했을까. 순간 가슴이 멎었다. 당장 어린이집에 찾아갈까. 아니다. 먼저 증거를 잡아야 해. 폐쇄회로(CC)TV는 설치돼 있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신문에 났던 아동학대 체크리스트부터 살폈다. 일단 몸에 상처는 없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이유를 물으니 “무서워요”라고만 했다. 전문가들은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자녀에게 “맞았니?”라는 질문을 직접 하지 말라고 했건만. 참지 못하고 “선생님이 때리니?”라고 물었다. 아들은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대답을 피했다.
헌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아들은 망설임 없이 선생님에게 달려가 안겼다. 아빠가 일터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보다 더 반가운 표정으로. 배신감이 들 정도였다.
아들 문제를 상의하니 선생님은 자초지종을 설명해줬다. 새로 온 아이가 소리를 크게 지른단다. 같은 반 아이들이 이 때문에 놀라거나 우는 일이 많다고. 사실 확인도 안 하고 어린이집 선생님부터 의심해 미안했다.
인천 K어린이집의 아동학대 영상이 공개된 뒤 타오른 국민들의 분노가 3주째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 분노의 힘은 어린이집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로 분출됐다. 정부는 연일 관련 대책을 내놨고, 언론도 연일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아들의 일을 겪으며 뒤를 돌아보게 됐다. 미셸 푸코의 지적처럼 과연 감시와 처벌의 수위를 높이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급하게 나온 대안들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 건 아닌지 말이다.
분노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긍정적인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치면 독이다. 동영상이 뜰 때마다 분노하다가 정작 우리는 아동학대 문제에 무감각해질지 모른다. 세월호 사고 이후 계속되는 안전 불감증처럼.
기자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믿어보기로 했다. 감시와 처벌보다 더 강력한 건 결국 신뢰와 소통일 수 있다는 기대로. 자주 찾아가 대화하다 보면, 선생님이 혹시 화가 나도 한 번 더 생각해주지 않겠는가. 가족, 지역사회 자원봉사자가 자유롭게 드나드는 미국의 어린이집에선 학대가 덜 발생한다지 않는가. 퇴근길 분노와 의심을 앞세웠던 것에 대한 반성의 마음으로 어린이집 선생님께 보낼 엽서 한 장을 사려 한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