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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칼럼]‘크림빵 아빠’와 머나먼 사범대 개혁

입력 | 2015-02-03 03:00:00


정성희 논설위원

임신한 아내의 임용고시 준비를 도우며 화물차 기사로 일하다 뺑소니차에 치여 숨진 이른바 ‘크림빵 아빠’ 사건이 화제다. 자칫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의 진범을 찾아낸 한국 누리꾼의 힘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정작 눈길이 가는 지점은 따로 있다.

‘크림빵 아빠’ 강모 씨는 사립대 교육공학과를, 아내는 한국교원대를 졸업했다. 부부는 얼마나 오랫동안 임용고시를 준비했으며 남편은 어쩌다 화물차를 몰게 된 걸까. 임용고시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젊은 부부의 삶은 얼마나 불안했을까. 교육정책의 실패를 왜 교직 전공자들이 짊어져야 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최근 5년간 중등교원 임용고시 평균 경쟁률은 16.1 대 1이다. 일반 취업경쟁률보다 덜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임용고시는 교직 전공자만 지원하므로 일반 취업준비생과는 비교하기 힘들다. 16명 가운데 15명이 교사가 될 날을 꿈꾸며 화물차 기사로, 편의점 알바로, 사설학원 강사로 뛰고 있는 건 비정상이다. 지난해에 교원자격증을 손에 쥔 사람은 2만3240명, 이 가운데 4631명이 교사로 임용됐다. 일곱 번, 여덟 번 재수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체감취업률은 훨씬 더 낮을 것이다. 개인적 불행이기 이전에 사회적 국가적으로 이런 낭비가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사범대와 교직전공 학과가 포화상태라는 점은 분명하다. 사범대가 있는 대학이 45곳, 일반대학에서 교육학과가 설치된 대학이 54곳, 교직과정 또는 교육대학원이 있는 대학이 61곳이나 된다. 전문대는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이 많은 교직 전공자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정식 교사가 되지 못한 교직 전공자들이 손쉽게 취업하는 곳이 학원이다. 사범대가 학원 강사 양성소라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임용고시 합격자가 포진한 학교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탈락자들이 모여 있는 학원 경쟁력이 높은 이유가 내겐 수수께끼다.

‘임용고시 낭인’ 현상을 만든 가장 큰 원인은 교육당국에 있다. 학생 수 감소는 오래전 예고됐는데도 정부는 대응에 실기(失機)했다. 교육부는 1990년대 후반까지도 교사 수가 부족하다며 중등교원을 양성하는 학과를 확대하다가 1998년에야 정원 감축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제로 감축에 들어간 건 2011년부터다. 사범대 출신들이 교육부 요직을 맡아 개혁에 미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학들의 책임도 크다. 교원양성 관련 학과의 정원을 대학이 자발적으로 감축한 인원은 2011년도 사범대에서 38명, 2012∼2013년도 일반대학 교육과에서 85명뿐이다. 내 전공 학생만은 줄일 수 없다는 교수들의 전공이기주의에 등록금 수입이 아쉬운 대학이 야합한 결과다. ‘크림빵 아빠’와 같은 젊은이들이 그 희생양이다.

교직 과정을 개혁해야 할 이유가 졸업생 취업난 때문은 아니다. 교직 과정의 양적 확대가 질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고 하는데 한국 대학들은 교육여건과 미래사회에 부합하는 자질과 역량을 가진 교사를 양성하고 있는 건가.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21세기를 이끌어갈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기 위해 우리는 2018년 문·이과를 통합한다. 그러기 위해선 문·이과 통합 교과서를 잘 만들어야겠지만 더 중요한 게 교사다. 교사가 전공의 벽을 넘나들며 통합적으로 사고해야 학생도 그렇게 배우지 않겠는가. 통합교과서를 만들기 이전에 전공별로 나눠진 사범대부터 개혁해야 할 것 같은데 대학들은 무풍지대다. 지지부진한 사범대 개혁을 보니 ‘크림빵 아빠’의 비극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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