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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짧은 소설]송유관 절도 미수 사건

입력 | 2015-02-04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기호 소설가

정식과 만호가 땅굴을 파 내려가기 시작한 것은 보름 전의 일이었다. 밤 여덟 시부터 시작해 새벽 네 시까지, 오직 삽과 곡괭이를 이용해 폭 일 미터, 높이 일 미터 오십 센티미터 크기의 땅굴을 파 내려간 것이었다. 땅굴이 무너지지 않게 천장과 양 벽엔 버팀목을 세웠고, 파 낸 흙은 마대에 담아 밖으로 빼냈다. 곡괭이를 내리칠 때마다 흙먼지가 심하게 날렸고, 그래서 그들은 자주 기침을 했다. 그래도 그들은 쉬지 않고 곡괭이질을 했고, 삽질을 했다. 땅굴 작업장을 밝혀주는 백열등이 그들 그림자를 알 수 없는 산짐승처럼 커다랗게 만들어주었다. 그들은 자주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한 달 전, 동네 호프집으로 정식과 만호를 불러낸 고등학교 선배 형태는 대뜸 탁자에 지도 한 장을 펼쳐 놓았다.

“이게 내가 아는 형님한테 얻은 지도인데, 봐봐, 여기 이 빨간 줄로 표시된 부분 있지? 이게 바로 송유관이라는 거야. 울산에서 시작해서 대구, 추풍령, 대전, 천안, 판교, 서울까지 가는 송유관. 이 지도 보면 뭐 느껴지는 거 없어?”

“길긴 되게 기네요.”

정식이 만호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만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아니, 긴 거 말고, 여기 이 지점 말이야. 여기 안성 공도읍 지점.”

“어, 여긴 우리 집 근처인데….”

만호가 말했다.

“그러네. 너네 집 옆 도로 건너편 같은데?”

“바로 그거야.”

형태는 고개를 조금 아래로 숙이며 정식과 만호를 보았다. 그러면서 만호네 집 창고에서부터 여기 송유관까지 땅굴을 파주기만 하면 나머진 자기가 다 알아서 해주겠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걸리지 않을까요?”

정식이 묻자 형태가 대답했다.

“이건 말하자면 흘러가는 강물에서 바가지로 물 몇 번 퍼내는 거랑 비슷한 거야. 티도 나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갖고 가는 거지. 잘만 하면 나중에 너희들한테 주유소도 하나씩 차려줄 수 있어.”

만호와 정식은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얼마 전 안성 시내에 있는 한 중국 음식점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다가 함께 해고된 처지였다. 낮엔 딱히 할 일이 없었고, 밤에도 할 일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잠도 오지 않는 것, 땅이나 파보지 뭐. 만호와 정식은 그렇게 생각했다.

형태는 사흘에 한 번씩 레이저 수평계를 들고 땅굴에 찾아왔다. 삼발이처럼 생긴 그것과 지도를 펼쳐놓고 땅굴의 방향을 잡아주었다.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애쓰면 빨간색 관 같은 게 보일 거야. 그게 바로 송유관이지. 형태는 그들을 찾아올 때마다 치킨 한 마리를 사들고 왔다. 형태는 땅굴에서 채 이십 분도 머무르지 않았고, 계속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만호와 정식은 성실하게 땅굴을 팠다. 이게 완전 노가다네. 만호와 정식은 쉴 때마다 그런 얘기를 했다. 어디 가서 일당을 받아도 벌써 백만 원은 넘게 벌었을 거야. 그러니까 이건 범죄가 아니야. 이건 그냥 수고의 대가지.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열심히 일해본 적이 없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만호와 정식은 다시 숨을 헉헉거리며 곡괭이질을 했다.

땅굴을 파기 시작한 지 사십 일 정도 지난 뒤의 일이었다. 형태가 새벽 한 시 무렵 그들을 찾아왔다. 그는 땅굴 버팀목에 등을 기댄 채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주저주저 말을 꺼냈다.

“저기 말이야… 아, 이거 참, 미안해서 어떡하지….”

만호와 정식은 곡괭이 자루에 턱을 괸 채 형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기… 그러니까… 이게 좀 착오가 있었나봐… 그 지도가… 송유관이 아니고 가스관이라네….”

정식과 만호는 멍한 표정으로 형태를 바라보았다. 정식이 말을 꺼냈다.

“그래도 그것도 기름처럼 팔 수 있는 거 아니에요?”

형태는 고개를 짧게 흔들고는 말했다.

“팔 수는 있는데… 그건 기름처럼 퍼낼 수가 없는 거거든. 거기에다가 구멍 뚫었다가 여기 전부 다 날아갈 수도 있고.”

형태는 힐끔힐끔 정식과 만호의 손에 쥐어진 곡괭이 자루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게 지도가 중요한 건데… 아이, 참, 이게 분명한 지도라고 했는데… 내가 너희들한테 미안해서 어떡하냐? 나가서 치킨 좀 먹을래?”

형태는 그렇게 말했지만, 정식과 만호는 계속 말이 없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백열등 전구가 좌우로 흔들렸다.

“이 땅굴… 이거 다 어떡하지?”

만호가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