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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철학과, 철학이 밥 먹여주냐고? 행복을 먹여줍니다!

입력 | 2015-02-04 13: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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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철학과장인 김재철 교수는 “이해관계가 얽힌 수많은 난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면 종합적인 사고, 즉 철학적인 사유능력이 필요하다. 철학은 당장의 취업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지라도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과 선택의 순간에 큰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사진 안영식 전문기자

철학이 힐링에 나섰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 문화산업 사회다. 그 어느 시대보다 풍부한 상상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무한경쟁에 내던져진 현대인은 자기위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십상이다. 타인, 심지어 가족과도 고립돼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철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에 대한 ‘실용적 요구’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인류를 상상력의 세계로 이끌고 자신을 포함해 타인까지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달라는 요구가 그것이다. 교육부 특성화 사업에 선정된 경북대학교 철학과 중심의 ‘상상과 치유의 인문인재 양성 사업단’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철학자 칸트는 “인간의 상상력은 과거의 기억, 현재의 지각 차원을 넘어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새롭게 창조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사업단장인 철학과 김석수 교수는 “하지만 상상력 안에는 나르시시스트가 될 위험이 내재돼 있다. 천재의 상상력도 ‘관계’를 상실하면 ‘광풍’이 될 위험도 있다. 더군다나 무한 경쟁은 서로를 고독한 광인으로 만들어 모두가 자멸하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상상력은 현실을 망각하거나 착각하는 미숙함도 지녔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상상력은 우리에게 파르마콘(pharmakon), 이른바 약이자 독이기도 하다. 상상력 교육을 지나치게 상업주의로 몰고 갈 경우 그것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칸트도 천재가 광인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상상력이 함께 어울리는 공통감(sensus communis)을 중시했다”고 지적했다.

상상력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창조적 힘과 자신을 타인과 어울리게 하는 공감력을 모두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 공감력은 현대사회에서 너무나 절박하게 요구된다. 21세기 현대사회는 무한 경쟁과 상호 감시가 고착화돼 서로가 외톨이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늘어나고 자살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불안, 피로, 고독, 우울, 자살로 이어지는 암울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게 하는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경북대 철학과 창립 60주년 기념행사 중 모든 학문의 근간이 되는 철학에 대한 학생들의 ‘애정’을 파악하기 위해 ‘철학 스피드 퀴즈’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 제공 경북대

김 교수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창조와 치유 분야 직종에 학생들이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철학실천상담학회 등을 통한 라이선스 발급 등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유럽의 대학들, 특히 독일 대학가 서점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진열대에는 항상 철학책이 놓여 있다. 학문의 기초는 인문학인데 그것의 토대는 바로 철학이기 때문이 아닐까.

경북대 철학과는 불문학과, 영문학과, 독문학과와 함께 2014년 말부터 2015년 초까지 ‘상상과 치유의 해외연수 챌린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5개 팀(팀당 5~8명)이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인문치료 기관(철학상담, 영화치료, 연극치료 등)을 탐방하고 체험했다. 정신건강증진센터를 방문해 현장의 문제들을 논의했다. 전문가(정신과전문의, 심리치료사, 수도자 등)의 특별 강의도 5차례 열었으며 향후 5년간 총 20차례를 계획하고 있다.

겨울방학 기간인 2015년 1월에는 ‘탈을 쓰고 상상하며 치유하라(안동 하회별신굿탈춤 체험)’ ‘고전(古典)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청암사 템플스테이’ 등과 같은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이와 관련해 철학과장인 김재철 교수는 “상상과 치유는 철학과가 가진 고유능력을 살릴 수 있는 실용적인 아이템이다. 기존의 심리치료, 정신의학적 치료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다원화된 시대에 소통을 담당하는 종합적 사유능력을 가진 인재를 배출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인문학적 갈증과 갈망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 탈출한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젊은 층도 마찬가지다. 경북대 교양과정 중 100여 개가 철학 관련(논리와 비판적 사고, 철학사상사, 과학기술과 윤리, 영화와 철학 등)이다”고 말했다.

흔히들 ‘철학을 해서는 밥 먹고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취업률은 낮다. 하지만 ‘평균 수명 100세 시대’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철학은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

경북대 철학과 김영기 교수(사회철학, 분석윤리학)가 ‘2015 철학과 KNU 오픈캠퍼스’ 프로그램 강연 중 행복에 대해 강론하고 있다. 사진 제공 경북대


김재철 교수는 “우리 주변에서는 이해관계가 얽힌 수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 난제를 효과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면 종합적 사고, 즉 철학적 사유능력이 필요하다. 요즘 일반 기업에서도 그런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서우 씨(4학년)는 “철학과는 딱히 불러주는 데는 없지만 갈 수 있는 데는 많다. 아직 우리 사회는 철학만 해서는 잘 먹고 잘살 수 없지만 살아가면서 부닥칠 문제 해결에 철학을 한 것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가 학생들 고민 상담 중 꼭 던지는 질문은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라는 것이다. “빵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옛날처럼 굶지는 않는다.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일단 그 일을 해라. 부모님의 기대보다는 네가 원하는 걸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철학과를 선택했다”는 이혜림 씨(3학년)는 “직업 또는 직장이 인생의 목표, 꿈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경제적 여건을 해결하는 수단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정 무엇이 행복한 삶이고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살고 있다. 철학을 공부하면 무엇을 결정할 때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조동현 씨(2학년)는 “대학의 진정한 목적은 학문 탐구다. 하지만 취업을 위한 기관으로 전락한 게 현실이다. 취업은 살아나가는 수많은 과정 중의 하나다. 사는 목적과 이유를 탐구하는 학문이 철학이다. 철학을 너무 실용적으로, 낮은 단계에서만 보지 말고, 좀 더 넓고 긴 안목에서 봤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경북대 철학과는 2014학년도 수능 평균 2.5등급(표준점수 495점)이었고 수시 60%, 정시 40%로 선발했다. 특성화 학과 선정으로 학생 1인당 평균 장학금은 146만 원. 이혜림 씨는 성적 우수 장학금, 국가장학금, 국가 근로장학금 등 다양한 지원을 받아 학비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

경북대 철학과와 입학본부가 공동 주최한 ‘2015 철학과 KNU 오픈캠퍼스’ 프로그램에 철학전공 체험을 신청한 고교생들이 질의응답 시간에 철학과 학부생, 대학원생들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 제공 경북대

김재철 교수는 최근 방문한 홍콩의 철학카페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17세 남자아이가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뻘 되는 60, 70대들과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김 교수는 “그 남자애가 일방적으로 기성세대의 조언을 듣는 자리가 아니었다. 서로가 자신의 고통 경험담을 털어놨다. ‘아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 고통을 겪는구나. 나와 타인이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요즘 선진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철학카페는 커피나 맥주 한잔을 놓고 공통 화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담론장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철학카페 같은 만남의 장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무엇이 진정한 행복일까. 이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행복의 시작은 아닐까.

대구=안영식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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