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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370번 실험… 기다려준 인내경영의 승리”

입력 | 2015-02-05 03:00:00

무도장 메탈릭 소재 개발, 포드에 공급하는 삼성SDI 강수경-김재경씨
도색 안해 친환경 기술… 비용도 줄어
“휴대폰 소재는 시간쫓겨 1달새 뚝딱… 소재산업은 장기간 투자해야 성과”




포드는 2015년형 몬데오의 센터페시아(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조작장치)와 콘솔패널, 기어패널 둘레 부분에 삼성SDI가 개발한 ‘무도장 메탈릭’ 소재를 사용했다. 삼성SDI 제공

지난해 7월 한국을 방문한 일본의 화학기업인 도레이그룹의 닛카쿠 아키히로 사장은 “한국 소재기업엔 인내심을 갖고 투자하는 일본의 경영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레이가 ‘꿈의 소재’인 탄소섬유를 만드는 데 40여 년이 걸렸다는 점도 강조했다.

당시 국내 소재부품 업계는 이 발언이 ‘초일류 소재기업’을 내걸고 제일모직과 합병한 삼성SDI에 대한 쓴소리로 생각했다. 선두기업을 모방하는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소재공급업체인 삼성SDI가 일본식의 ‘인내심 경영’을 하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본 것이다.

“맞습니다. 소재산업은 기다려야 합니다. 이번 성공도 회사가 참고 기다려준 덕분이죠.”

2일 경기 의왕시 삼성SDI의 연구개발(R&D)센터에서 만난 이 회사의 강수경 선행디자인팀 팀장과 김재경 칼라랩 그룹장은 최근 자동차업체에 ‘무도장(無塗裝) 메탈릭’ 소재를 업계 처음으로 공급한 비결이 회사의 인내심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무도장 메탈릭 소재는 금속 느낌을 주는(메탈릭) 플라스틱에 염료 등을 섞어서 색상과 광택을 낸다. 미국 포드 자동차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 소재를 2015년형 몬데오의 센터페시아(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조작장치)와 콘솔패널 등에 적용했다.

강 팀장과 김 그룹장은 2012년 1월부터 컬러 개발에 착수해 2년 3개월간 370여 차례의 실험을 거쳤다. 총 개발 기간은 3년여에 이른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출시 주기에 맞출 때는 빠르면 1개월 안에 모든 작업을 끝내야 합니다. 다른 업체는 이를 맞추지 못해 공급을 포기했죠. 이런 방식에 익숙해있던 팀원들이 3년간 작업을 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김 그룹장)

이 소재를 사용하면서 포드는 스프레이 등을 이용해 색을 칠하는 도장 작업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자동차 생산공정은 친환경적으로 변했다. 대당 13달러(약 1만4300원)의 생산비용도 아끼게 됐다.

김 그룹장은 “이번 소재 공급으로 우리 측 마진도 3배 이상 늘었다”며 “현재 포드 외에도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 등 북미의 ‘빅3’ 업체에 이 소재를 공급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공의 이면에는 회사의 인내심과 함께 디자이너 출신인 강 팀장과 엔지니어인 김 그룹장의 협업도 한몫했다. 강 팀장은 “김 그룹장과 함께 일을 하면서 우리 스스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디자이니어’로 부르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에서 스마트폰이나 가전제품의 외장 디자인과 소재를 담당했던 강 팀장은 2011년 제일모직으로 이직한 뒤에야 플라스틱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 김 그룹장도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면서 고객과의 소통이 한결 쉬워졌다.

김 그룹장은 “보통은 고객이 요구하고 우리는 맞춰주는 방식으로 일해 왔지만 디자이너가 합류한 이후에는 우리가 먼저 색상과 광택을 제안하고 이를 고객사와 협의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성공에도 강 팀장은 여전히 회사의 ‘문제아’로 찍혀 있다. 기존 소재를 고객의 요구에만 맞춰 빠르게 공급하는 사업방식에 일일이 참견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과 금속, 유리를 융합하고 소재에 감성을 불어넣자고 말하면 빠른 성과가 필요한 임원들은 저를 피합니다. 하지만 결국 소재산업은 이런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