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어린이 초대해 밥해주고싶다”
초인종을 몇 번 눌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20분가량 지났을까. ‘이번에도 답이 없으면 돌아서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길게 초인종을 눌렀다. 그때였다. 인터폰을 통해 가느다란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치라사마데스카(どちらさまですか·누구세요).”
“한국에서 온 신문사 기자입니다. 어머니를 꼭 뵙고 싶습니다. 고인에게 분향도 하고 싶고 한국 국민들에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왔습니다.”
▼ “아들은 싸움 없는 세상 꿈꿔… 제2, 제3의 겐지 생기지 않길” ▼
‘IS에 피살’ 겐지의 어머니 日현지 인터뷰
제발 죽이지말라고 호소했는데… 분노-증오는 또다른 희생만 낳아
어린시절 마산서 1년동안 살아… 한국 어린이들도 만나고 싶어
고토 겐지 씨 어머니 이시도 준코 여사가 3일 자택 거실에 차린 분향대 옆에서 지난해 생일 때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고토 씨처럼 저도 행동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63세의 한 시민.’
메모를 읽던 기자에게 여사가 “며칠 전 대문 앞에 놓여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향을 피우고 묵념을 마친 뒤 돌아섰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는 모습에 기자의 마음도 먹먹해졌다. 잠시 후 분향대 앞 작은 테이블 앞에 마주 앉았다.
“혹시 마산이라는 곳을 아시나요?”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여사는 일제강점기인 7세 때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경남 마산에 가서 1년 동안 살았다고 한다. 그동안 일본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았던 여사가 일면식도 없는 ‘한국 기자’에게 마음을 열어준 것은 그런 기억 때문 아니었을까.
인터뷰가 진행되던 1시간 동안 여사에게서는 남다른 겸손함과 배려심이 느껴졌다. 생지옥 같은 곳에서 고통받는 다른 나라 아이들을 걱정했던 아들의 휴머니즘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아드님은 어땠나요.
“아주 밝고 정이 넘쳤지요. 어릴 때부터 남에 대한 배려가 유난했어요. 초중학생 때는 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했어요. 리더십이 있는 아이였죠. 대학 때 미국 컬럼비아대로 1년간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해서 제가 보습학원에 나가 아이들 가르친 돈으로 학비를 댔죠.”
―분향대 위 다정하게 찍은 모자(母子) 사진이 최근 것 같습니다.
“작년 겐지 생일 때 찍은 거예요. ‘엄마도 이제 많이 늙으셨다’고 놀리던 말이 귀에 생생하네요…. 일 얘기는 잘 안 했어요. 작은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늘 위험한 곳을 다녀 걱정이 많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고 또 남을 위한 일이니까 속으로 응원만 열심히 했죠.”
―아들이 인질로 잡혔다는 것을 안 것은 언제쯤인가요.
여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들의 죽음으로 증오의 사슬이 만들어지는 건 원치 않는다’고도 하셨지요. 아들을 죽인 사람들에 대한 원망은 없으세요.
“상대를 비난하고 증오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또 다른 겐지가 나올 수도 있고 희생자만 늘어날 수 있죠. 슬퍼하고 분노하기보다 제2, 제3의 겐지가 나오지 않도록 함께 해결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지금 남을 미워하는 마음조차 가질 여유가 없어요. 겐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칩니다.”
여사가 분향대 위 아들 사진을 바라보더니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아들은 늘 싸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이번에도 그걸 실행하려다 먼 길을 떠났다고 생각해요.”
―왜 그런 위험한 곳에 갔느냐는 비난이 있는 것도 알고 계신가요.
“(목소리가 약간 커지며) 겐지는 사리사욕을 위해 간 게 아닙니다. 또 다른 인질인 유카와 하루나(湯川遙菜) 씨를 구출하러 간 것입니다. 요즘 아들의 뜻을 이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겐지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랍의 어린이들을 초대해 따뜻한 방에서 재우고 밥도 해주고 싶고요, 한국 어린이들도 초청하고 싶네요. 겐지도 그런 제 모습을 보면 하늘에서 기뻐할 것 같아요. 저도 아들이 곁에 있는 것 같아 덜 외로울 것 같고요.”
마무리 인사를 하려 하자 여사가 갑자기 분향대로 가더니 아들 사진이 든 액자를 가슴에 꼭 껴안았다. 그러다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기자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