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되고 폐쇄적인 나라인 데다 에볼라 발병지인 아프리카 기니와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에서 제일 멀리 있다. 이웃 13억 인구의 중국도 조용하고,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도 무탈한데 유독 북한만 당장 에볼라 바이러스가 국경에서 입국 수속이라도 밟고 있는 듯이 생난리다.
노동신문과 중앙방송은 주기적으로 지면과 시간을 크게 할애해 에볼라의 위험성을 다루고, 주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에볼라 방역 상식 교육도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의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같은 북한 최고 실세도 외국에 다녀와선 외진 곳에 21일간 격리됐다. 에볼라 최장 잠복기가 21일이기 때문이란다. 북한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각종 국제대회도 올 8월까지 줄줄이 취소됐다.
북한이 에볼라를 이유로 지난해 10월 24일 국경을 전격적으로 폐쇄했을 때만 해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볼라 공포를 이용해 집권 3년이 넘도록 성과가 없는 김정은에게 주민의 불만이 쏠리는 것을 막고 반미 감정도 북돋우려 할지 모른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을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북한은 진짜로 에볼라에 끔찍한 공포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오죽하면 남쪽에 에볼라 예방 의약품을 달라고 요구했을까.
이번 소동을 보며 2년 전 개봉된 좀비 영화 ‘월드워Z’가 떠올랐다. 영화 속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은 이런 말을 한다.
“지금 세계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북한이다. 이에 물리면 좀비가 되기 때문에 당국이 하루 만에 주민 2300만 명의 이를 모두 뽑아버렸다.”
이번 호들갑의 배후엔 김정은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가 에볼라에 엄청난 관심을 돌리며 열심히 부채질하지 않고서야 북한이 저렇게 일사불란하게, 최고위 실세까지 가둘 정도로 소동을 벌일 순 없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왜 에볼라를 그토록 두려워할까.
노동신문의 9월 7일자 ‘에볼라는 미국의 생물무기’, 11월 7일자 ‘에볼라 비루스를 전파시킨 장본인은 누구인가’ 기사에서 일말의 단초를 발견했다. 기사에서 북한은 에볼라 바이러스는 미국이 생물무기용으로 개발한 것이며 아프리카에서 시험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은 미국이 에볼라를 북한에 퍼뜨릴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을지 모른다. 공공보건이 마비된 북한에 에볼라가 퍼지게 되면 아프리카 못지않게 막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민심이 크게 흔들리면서 김정은 체제도 매우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올 1월 22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한은 결국엔 붕괴될 것”이라고 말한 뒤 북한의 공포감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더 큰 이유도 있을 것 같다. 미국이 외국에 온 북한 고위 인사에게 몰래 에볼라 바이러스를 감염시킬지 모른다는 공포다. 이들이 돌아가 김정은을 만나 감염시킬 수도 있고 최소한 지도부에 에볼라를 퍼뜨릴지 모른다. 최룡해조차 예외 없이 격리되는 것을 보면 이런 공포는 진짜로 있는 것 같다. 제아무리 신격화된 김정은이라 해도 에볼라 앞에선 한갓 인간에 불과하니 말이다. 요즘 북한엔 “김정은이 과거엔 시찰 때 인파와 어울리는 것을 즐겼지만 요즘엔 악수도 꺼린다”는 소문도 퍼지고 있다.
이쯤에서 하나 궁금해진다. 러시아 정부는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행사에 김정은이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에볼라가 무서워 진짜 갈 수 있을까. 동행한 대표단에 악수 금지령이 내려질지 모른다. 숙소의 모든 물건을 에볼라 바이러스 취급해 북한에서 별걸 다 바리바리 싸들고 갈지 모른다. 귀국해 북한에 발을 딛자마자 동행했던 고위층을 모두 격리시켜 21일간 가둬두고 혼자 집에 갈 김정은을 상상해봤다. 해외 언론이 반길 엽기 기록이 또 하나 생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