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김창완(61)은 대부분의 신곡을 ‘훔친 기타’로 만들었다.
DJ를 하는 라디오(‘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SBS 파워FM 매일 오전 9~11시)에서 노래 한 곡, 광고 한 편 나가는 사이, 가사를 끼적이거나 통기타를 치며 선율을 만든다. 밖으론 가요나 팝, 광고가 들리는 동안 작은 스튜디오 안에선 김창완의 관객 없는 공연, 창작이 이뤄지는 셈이다. 늘 손닿는 데 두는 기타 몸통에 ‘훔친 기타’라 썼다. “스튜디오에 놔뒀다 기타를 도둑맞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새 기타에 아예 ‘훔친 기타’라고 썼죠. 허허허.”
최근 서울 양천구 목동서로 SBS 본사 11층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창완은 특유의 맘씨 좋은 아저씨 웃음을 공기 중에 슬며시 풀었다. 그가 이끄는 김창완밴드가 5일, 3년 만의 앨범 ‘용서’를 냈다. 김창완밴드는 산울림 3형제 중 막내 김창익(1958~2008)이 불의의 사고로 숨진 뒤 그가 결성한 록 밴드다. “지난 앨범(2012년 ‘분홍굴착기’)에서 산울림의 옛 노래들을 재해석했는데, 이번에야 산울림 망령을 떨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느낌이에요.”
마지막 곡은 ‘아리랑’. “록 밴드로 ‘아리랑’을 하려는 시도는 산울림 시절 ‘청자’(1977년), ‘백자’(1979년)부터죠. ‘아리랑’은 소문난 명산인데 아무리 해도 오를 방법을 모를 산 이었죠.” 해법은 조율이었다. 그는 “기타의 여섯 줄을 모두 ‘솔-시-레’가 되게 변칙 조율한 뒤 한번 내리치니 그대로 아리랑이 들리는 듯했다”고 했다. 태평소 연주(안은경)를 보탰다.
한국적인 록에 힘을 보탠 건 뜻밖에 영국사람. 런던 메트로폴리스 스튜디오의 엔지니어 에이드리언 홀이 춘천에 와 김창완밴드의 연주를 기록했다. “다양한 국악기와 록 악기가 어우러져 내는 묘한 배음(倍音)을 홀은 금방 캐치해냈어요. 외국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깨졌죠.”
‘제발 내 나이를 묻지마!’를 외치는 타이틀 곡 ‘중2’, 가슴 도리는 ‘괴로워’를 빼고 대부분 읊조리는 느린 곡이다.
‘당신의 묘를 찾을 때까지 수천, 수만 년이 걸려도 날겠다’는 ‘무덤나비’의 내레이션은 가히 섬뜩하다. 김창완이 아끼는 노래다. “진정한 용서는 죽음, 이별로부터도 나를 해방시키는 거더군요.” 그의 스튜디오가 폭풍 같은 비극투성이 세상에서 격리된 무균 실험실처럼 느껴졌다.
“어마어마한 일들이 매일 일어나는 세상에서 생각 없이 먹는 밥 한 끼, 밥숟가락 하나에 담긴 의미, 진짜 벅찬 삶…. 이런 것들은 너무나 작고 하찮은 일로 전락하고…. 체온을 돌려줄 때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뭘 노래하든지간에 내가 진짜 사랑했다는 것을 노래로 알려주고 싶었어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