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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비키니]적토마 vs 두목곰, 누가 잠실의 왕일까

입력 | 2015-02-06 03:00:00


둘은 선봉장이고 고싸움의 줄패장(고 위에 올라타 싸움을 지휘하는 우두머리)이었다. 전쟁을 치를 때마다 둘은 자기 팀의 주포였고, 상대 팀에는 첫 번째 봉쇄 대상이었다. 그렇게 17년이 흘렀다. 3루 쪽 라커룸 리더가 1년 먼저 신인상을 타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듬해 1루 쪽 라커룸 리더는 데뷔 첫 두 타석에서 연달아 홈런포를 쏘아 올리는 걸로 화답했다.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전쟁은 막이 올랐다.

여전히 프로야구 LG를 이끄는 ‘적토마’ 이병규(41)와 이제는 전장에서 물러나게 된 ‘두목 곰’ 김동주(39·전 두산) 이야기다. 둘은 어쩌면 팬들이 그들의 소속 팀보다 더 사랑하는 선수였고 팬들의 자부심이었다. 한쪽이 물러났으니 이제 묻자. 과연 누가 진짜 ‘잠실의 왕’인가.

○ 방망이는 확실히 두목 곰

양 팀 팬들에게는 통산 기록보다 중요한 게 있다. 8개 구단 시절 해마다 잠실에서 열리는 프로야구 경기 4분의 1은 두 팀의 맞대결이었고, 그 경기 모두 양 팀 팬들에게는 숙명의 라이벌전이었다. 두산은 김동주와 함께 웃었다. 두산은 ‘김동주의 전성시대’였던 1998∼2011년 맞대결 전적 156승 5무 99패(승률 0.612)로 우위를 점했다.

김동주는 잠실에서 홈런을 통산 131개(역대 1위) 쳤다. 이 중 LG 투수가 맞은 건 39개(29.8%). 김동주는 잠실에서 LG만 만나면 평소 잠실 경기 때보다 20% 가까이 홈런 비율이 늘었다. 잠실 라이벌전에서 김동주의 통산 OPS(출루율+장타력)는 0.940. 21세기 최강 팀 삼성 팬들조차 공포에 떨게 했던 브룸바(41·전 현대)의 통산 성적과 같다. 김동주는 이 성적을 ‘타자 지옥’ 잠실에서 냈다.

물론 이병규도 맞대결 통산 타율이 0.337이나 되지만 전체적으로는 김동주가 한 수 위다. LG 팬들이 틈만 나면 우타 거포를 갈망하는 데 ‘김동주 트라우마’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 팀에는 더 확실한 적토마

2012년 이후 LG는 잠실 라이벌전에서 28승 1무 22패(승률 0.560)로 역전에 성공했다. ‘잠실의 파괴자’ 김동주가 전력에서 이탈한 뒤였다. 그러는 사이 이병규도 LG가 두산을 밀어내듯 ‘잠실의 왕’ 자리에 올랐다.

2013년 이병규는 응원가 가사 그대로 ‘L∼G의 이병규’였다. 자기 이름 석 자보다 팀 이름이 앞에 오는 ‘캡틴’이었다. 시즌 초반 부상으로 퓨처스리그(2군)에 머물던 이병규는 후배들이 식사 시간 부족을 호소하자 앞장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그가 없이 뛰던 LG의 1군 선수들은 “이병규 선배만 돌아오면 우리가 진짜 ‘UTU(올라갈 팀은 올라간다)’ 주인공이 될 것”이라며 버텼다. 이병규는 복귀 후 최고령 타격왕(0.348)에 올랐고, LG는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이병규는 시즌 뒤 25억 원에 LG와 자유계약선수(FA)로 계약했다.

데뷔 때 둘의 기대치는 엇비슷했다. 통산 성적만 놓고 보면 김동주가 낫다는 말에 무게감이 실린다. 하지만 왜 이렇게 대조적인 말년을 맞이하게 된 걸까. 팀이 스타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스타도 팀을 필요로 한다. 김동주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다음이었는지 모른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