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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김상운]‘문화 강국’ 외치면서… 80년간 몰랐던 금관 훼손

입력 | 2015-02-07 03:00:00

조선총독부 원형 사진 남겼는데… 지금까지 육안비교조차도 안해




김상운·문화부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서봉총 금관 훼손을) 찾아냈다는 말은 평소에는 건드리지도 않고 방치했다는 얘기 아닌가.”(아이디 bjh9****)

“일제가 잘못했지만 대한민국 문화재 관리 수준도 상당히 엉망이다.”(아이디 cafe****)

신라 왕릉인 ‘서봉총(瑞鳳塚)’ 금관이 일제강점기에 심하게 훼손됐다는 소식을 6일 접한 누리꾼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동아일보의 이날 1면 기사를 실은 한 포털사이트 웹페이지에는 1200여 개의 댓글이 일제히 달렸다. 대부분의 글은 일제의 문화재 유린에 대한 성토였지만 국립중앙박물관 등 우리 문화재 당국에 대한 준엄한 비판도 상당수 올라왔다.

문화재계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를 먼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추정한 금관의 훼손 시기(1934∼1939년)를 감안할 때 무려 80년(광복 이후로도 70년) 동안이나 훼손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조선총독부가 남긴 1920, 1930년대 서봉총 금관 촬영 사진은 화질이 양호해 육안으로도 원형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비전문가도 일제강점기에 찍은 사진을 현재와 비교하면 금방 찾아낼 수 있는 문제를 광복 후 70년 동안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중앙박물관의 서봉총 유물 조사보고서가 1926년 발굴 이후 89년 만에 나온 첫 발굴보고서라는 점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일제강점기 서봉총 발굴을 이끈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가 수집한 각종 유물 자료가 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내내 보관돼 있었는데도 중앙박물관은 지금껏 제대로 된 조사보고서를 한번도 내지 않았다.

실제로 동아일보 취재 결과 중앙박물관은 보고서 작성에 앞서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작성한 옛 자료들을 뒤져보는 과정에서 1926년 서봉총 발굴 직후 유물 배치도를 촬영한 유리 건판을 우연히 발견했다. 유물 배치도를 보면 피장자가 어떤 유물을 몸에 지닌 채 묻혔는지를 알 수 있어 성별을 파악할 수 있다. 중앙박물관은 이처럼 중요한 자료를 70년 동안 자료실에 방치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그동안 피장자의 성별을 놓고 여성일 것이라는 ‘추정’만 내놓을 수 있었다.

성별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서봉총을 비롯한 장엄한 신라 왕릉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 이름조차 모른다. 피장자의 이름이 적힌 명문이 없다면 유물이나 유구를 정밀하게 분석해서 고고학적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말로만 ‘문화 강국’을 외치지 말고 주변에 널려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부터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