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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트렌드]“더 특별하게, 더 귀하게”… 자존심 싣고 질주

입력 | 2015-02-07 03:00:00

수입차 벤틀리-포르셰-렉서스 잘나가는 이유





벤틀리 모델 중 지난해 강남 3구에서 가장 많이 판매(10대)된 콘티넨털 GT V8. 전국적으로는 73대가 팔려 벤틀리모터스코리아가 한국 시장에서 역대 최대 실적(322대)을 내는 데 기여했다. 벤틀리모터스코리아 제공

‘BMW X3’ ‘아우디 SQ5’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지난달 26일 오후 9시 40분. 수입차 각 브랜드 내에서도 최고급 모델들이 일제히 비상등을 깜빡인 채 대로변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가격이 6000만 원 중후반대부터 2억 원 가까운 모델이다.

200m 정도 되는 거리에 쭉 서 있는 차 중 다수는 수입차였다. 빈자리가 없어 느린 속도로 도로를 배회하는 차도, 인근 카페나 빵집 앞에 주차를 하고 기다리는 차도 마찬가지였다. 이 일대에서 ‘BMW 520d’나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는 너무 흔한 모델이었다.

비싸고 뛰어난 주행 성능을 자랑하는 수입차들이 즐비한 이곳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다. 대치동에 거주하는 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다들 자기 애 기죽이기 싫어서 수입차 타요. 학교나 학원 앞에 데리러 가면 애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데 우리만 국산차면 좀 그렇잖아요.”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수입차 등록 대수는 승용차와 상용차를 포함해 108만8000대(지난해 말 기준)로 100만 시대를 이미 돌파했다. 지난해 국내에 등록된 전체 승용차(2011만7955대) 중 5.41%다.

이제 사람들이 수입차를 택하는 건 단순히 국산차보다 성능이 좋거나 디자인이 빼어나서만은 아니다. 수입차가 주는 만족감 때문에 탄다. 이 때문에 수입차의 선택 폭은 점점 하이엔드 브랜드나 모델로 넓어지고 있다.



포르셰는 지난해 한국에서 총 2568대를 판매해 전년 대비 27% 성장했다. 사진은 911 터보 S 쿠페. 포르셰코리아 제공

그들이 수입차를 타는 이유

#1. “우리 아이들이 특별해 보일 것 같아서”


두 아이의 엄마 김연경(가명) 씨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4.4 디젤’을 타고 있다. 2년 전 차를 구입하며 고민했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처럼 길에서 너무 자주 보이는 차는 싫다. 색다르고 안전하기까지 한 차였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선택한 게 레인지로버였다. 김 씨는 “이 차를 타고 나가면 우리 아이들이 특별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학원이나 학교에 데려다줄 때 아이 기를 세워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구입 당시 가격은 1억5000만 원을 훌쩍 넘겼다.

김 씨는 거의 매일 잠깐 운전한다. 아이들 데리고 외출할 때나 마트에 장 보러 갈 때, 운동하러 갈 때…. 오프로드(험로)에 최적화된 차인데 일상생활에서만 쓰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으냐는 질문에 김 씨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이 차를 타고 산길을 마구 달릴 것도 아니고요. 차가 안전해서 날씨가 안 좋을 때 안심이 되고 예민한 아기들이 차 안에서 잘 자거든요. 그거면 제가 레인지로버를 택한 이유, 설명되지 않을까요?”

#2. “마땅히 달릴 곳이 없어도 내게 즐거움을 주니까”

30대 직장인 박민형(가명) 씨는 요즘 매일 꿈을 꾸는 것 같다. 그는 지난해 9월 오랜 드림카였던 포르셰 ‘박스터’를 9000만 원 중반대에 샀다. 날씨 좋은 밤 지붕을 열고 특유의 엔진음을 들으며 달릴 때 제일 행복하다.

박스터가 가장 좋은 이유는 희소성이다. 박 씨는 2012년부터 박스터 구입 전까지 BMW 3시리즈를 탔다. 그는 “BMW가 좋은 차인 건 맞지만 너무 흔해졌다. BMW는 ‘나도 한번 사볼까?’ 할 수 있는 차이지만 포르셰는 절대 쉽게 손에 넣을 수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박스터는 운전자 외에 한 명밖에 탈 수 없고 연료소비효율도 이전 차에 비해 나쁘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은 사소할 뿐이다. 한국에서 고속으로 달릴 데도 별로 없는데 차 스펙이 너무 좋다는 지적도 있다. 박 씨는 “스포츠카가 속도만 즐기는 차는 아니다. 이 차가 내게 즐거움을 주고 나와 교감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젊은 놈이 부모 잘 만나서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매일 출퇴근할 때도 박스터를 끌고 다닌다. 가끔 세컨드 차인 국산 경차를 타거나 지하철을 이용한다. 박스터 주행거리가 늘어나는 게 싫어서다. 5년 뒤 박 씨는 포르셰 ‘911’을 살 계획이다.



강남 3구, 수입차 중에서도 럭셔리 브랜드·모델

소비자들은 점점 더 비싼 수입차를 찾고 있다.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나 같은 브랜드 내에서도 하이엔드 모델을 선호한다. 이는 특히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에서 두드러졌다.

동아일보는 KAIDA와 지난해 1∼12월 수입차 각 브랜드(22개)의 강남 3구 판매량이 서울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분석했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는 KAIDA의 공식 회원사가 아니라 분석에서 제외됐다.

서울 내 강남 3구 점유율이 가장 높은 브랜드는 벤틀리(58.70%)였다. 벤틀리는 지난해 서울에서 46대를 팔았는데 강남 3구에서만 27대를 판매했다. 벤틀리 다음으로 강남 3구 점유율이 높은 브랜드는 포르셰(57.31%), 렉서스(50.00%), 랜드로버(46.95%), 메르세데스벤츠(45.30%), 캐딜락(44.66%) 등이었다.

이는 지난해 수입차 브랜드별 국내 전체 시장 점유율 순위와 비교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결과다. 국내 수입차 시장 전체 점유율은 BMW가 20.46%로 1위였고 메르세데스벤츠(17.93%), 폴크스바겐(15.64%) 아우디(14.09%) 등이 뒤를 이었다.

‘국민 수입차’라고 할 수 있는 이 4개 브랜드는 전국에서 골고루 잘 팔리지만 서울 내 강남 3구 판매 비중은 높지 않았다. 강남 3구 점유율이 메르세데스벤츠는 5위였지만 BMW는 38.05%로 8위였고, 폴크스바겐은 18위(30.84%), 아우디는 7위(39.27%)였다.

강남 3구 점유율이 높은 브랜드들은 전국 점유율이 매우 낮았다. 벤틀리는 지난해 국내 시장 점유율이 0.16%에 불과해 전체 조사 브랜드 22개 중 21위였다. 포르셰는 1.31%로 16위, 렉서스는 3.29%로 8위, 랜드로버는 2.38%로 10위였다.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강남 3구에서도 물론 전체 시장 점유율이 높은 브랜드의 판매 대수가 절대적으로 많다. 하지만 럭셔리 브랜드의 서울 내 강남 3구 판매 비중이 높다는 건 소비자들이 흔한 수입차보다 자기 개성을 살려줄 차를 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강남 3구 내 판매 대수가 곧 전국 판매 대수인 모델도 눈길을 끌었다. ‘벤틀리 콘티넨털 GT 6.0’ ‘포르셰 파나메라 S 하이브리드’는 지난해 전국에서 딱 1대씩 팔렸는데 등록 지역이 각각 송파구와 강남구였다. 각각 2억8000만 원, 1억6540만 원이다.



부산, 수입차 2차 격전지로

최근 수입차 브랜드들은 서울 외 지역으로 외연을 확장 중이다. 최대 격전지는 부산이다. 벤틀리, 마세라티, 볼보, 재규어랜드로버 등이 앞다퉈 전시장을 열었다. 람보르기니도 부산 전시장 개장을 준비 중이다.

수입차 업체들은 부산에 비싸고 개성 있는 차종을 구매할 ‘능력 있는 소비자’가 많아졌다고 본다.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부산에서는 같은 모델이어도 고(高)사양, 롱 휠베이스 버전, 한정판 등이 잘 팔린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서울에는 대기업 오너나 임원이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느라 에쿠스 같은 국산차를 탄다. 하지만 부산에는 지역 중견업체나 전문직이 많아 남들 눈치 안 보고 비싼 수입차도 마음껏 탄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산에서는 서울보다 큰 차나 고가 브랜드 점유율이 더 높다. KAIDA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1.13%에 불과했던 포르셰 점유율은 부산에서는 2.12%였다. 벤틀리도 부산 점유율(0.17%)이 서울(0.12%)보다 높았다. 랜드로버 점유율도 부산(2.82%)이 서울(2.44%)보다 높았다. 반면 중소형 디젤 모델을 주력으로 하는 폴크스바겐의 경우 부산 내 점유율(8.55%)이 서울(19.4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시장 크기에 비해 비싼 차가 잘 팔리는 나라

수입차 브랜드에도 한국 시장은 독특한 곳이다. 각 브랜드 내에서 한국의 글로벌 판매 순위는 별로 높지 않은데 비싼 모델은 잘 팔린다. 재규어코리아는 지난해 재규어 전체 브랜드에서 판매 순위가 5위(1989대)였다. 고사양의 플래그십 모델 XJ(428대)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잘 팔린다.

지난해 랜드로버코리아의 글로벌 판매 순위는 14위(4675대)였다. 그러나 플래그십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레인지로버로만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 내 레인지로버 판매량(626대)은 세계에서 8위다.

아우디의 럭셔리 대형 세단 A8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 내 판매 실적(1510대)이 전 세계 4위였다. 아우디 내에서 한국 시장 순위는 세계 11위(2만7647대)다. 아우디코리아 관계자는 “판매 실적 10위인 일본은 한국보다 더 많이 아우디 차량을 팔지만 A3, A1 같은 소형차 위주”라며 “한국은 A6, A4, A7 등 더 큰 차종이 많이 팔려서 판매 실적 기여도가 더 크다”고 말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프리미엄 모델 S클래스(4602대)도 중국, 미국,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잘 팔린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관계자는 “지난해 한국 판매 실적(3만5213대)은 전 세계에서 11위였다”며 “한국 시장은 크기에 비해 비싼 모델을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럭셔리 수입차 브랜드는 최근 한국 시장에서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벤틀리모터스코리아는 지난해 한국에서 총 322대를 판매해 역대 최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164대) 대비 2배 가까운 성장세다.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한국에서 총 45대를 팔며 전년(30대) 대비 50% 성장함과 동시에 역대 최대 판매기록을 갈아 치웠다. 마세라티의 지난해 한국 판매량은 약 600대로 전년(120대) 대비 5배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람보르기니도 판매량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지난해 30여 대를 판매해 사상 최대 실적을 이뤘다. 포르셰코리아는 전년(2041대) 대비 27% 증가한 2568대를 판매했다.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하듯 영국의 고성능 스포츠카 브랜드 맥라렌은 4월에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전시장을 열고 국내에 공식 진출한다. 맥라렌 서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11번째로 문을 열게 됐다.








아우디의 럭셔리 대형 세단 A8의 지난해 한국 실적(1510대 판매)은 전 세계 4위를 기록했다. 아우디코리아 제공

▼2030 직장인 64% “수입차 사고 싶어”▼

출퇴근 1802명에게 물어봤더니





20대와 30대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수입차를 사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30대 중반이나 후반에 첫 수입차 구입을 희망했다.

동아일보가 취업포털사이트 사람인과 함께 ‘2030’ 직장인 18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4.2%(1157명)는 ‘수입차를 구매하고 싶다’고 밝혔다. 33.2%(598명)는 ‘수입차를 사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고 2.6%(47명)는 ‘이미 갖고 있다’고 답했다.

첫 수입차를 사고 싶은 시기는 30대 중반(26.1%)이 가장 많았다. 다음은 30대 후반(18.1%), 40대 초반(15.6%), 30대 초반(14.0%), 40대 중반(11.8%) 순이었다. 수입차를 사고 싶은 이유(복수 응답)는 ‘국산차보다 좋은 성능’(57.0%)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다음은 ‘자기만족을 느끼고 싶어서’(33.3%), ‘예전만큼 비싸지 않아서’(31.6%), ‘나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 같아서’(15.5%)라고 답했다.

한 수입차업체 관계자는 “최근 수입차 저변이 확대되면서 첫 차를 수입차로 사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며 “비싸고 큰 차 중심이었던 국내 수입차 업체들이 최근 조금 저렴한 소형차를 잇달아 출시하는 이유는 젊은층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