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기 마사오 동서대 석좌교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역사 마찰이 양국 정부의 매우 높은 레벨에서 일어난 것이다. 역사 인식과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둘러싸고 양국 지도자가 상대방에 강한 불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걸 푸는 게 쉽지 않다. 두 지도자는 과거 ‘악폐’를 바로잡겠다고 하고 있다.
지도자 레벨의 대립은 당연히 관료 기구를 움츠러들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게 장기화되면 관료 조직은 유연성과 창조성을 잃어버린다. 새 정책을 진언(進言)하기보다 지도자의 생각을 정당화하는 편이 쉽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작년 11월 초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서로 옆에 앉아 비교적 장시간에 걸쳐 의견을 교환했다. 그 후 한중일 3국 외교장관 회담을 조기에 열고 그걸 토대로 한일 정상회담을 여는 방안이 떠올랐지만 그것도 실패로 끝난 것 같다.
지도자 레벨의 역사 논쟁 문제만 있다면 미래를 낙관하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 좋든 싫든 수년 후 양국은 정권이 바뀐다.
하지만 역사 논쟁뿐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동아시아 국제시스템의 큰 변동, 즉 중국의 대국화와 그에 기인하는 한국 외교의 중국 중시가 한일 관계에 복잡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시 말해, 지도자 레벨에서의 상호 불신과 한국 외교의 재편성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고, 그런 현상이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게 현재 한일 관계의 복원력을 빼앗고 있다.
한국 외교의 일본 경시와 중국 중시는 표리일체(表裏一體)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 대통령이 미국과 중국을 방문한 것이다. 이는 한국이 중국 접근을 통해 일본을 견제하고, 대일 역사 비판을 강화함으로써 미국에 대해 한중 접근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필자는 그게 한국 외교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시대와 환경에 따라 외교가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중국이 대국화한 현재 ‘한미중+전방위’ 외교로 바뀐 것처럼 보인다. 그게 일본인들이 느끼는 불안감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현상이 한국의 ‘사대주의 외교’라는 전통적인 한국관과 합쳐져 일본의 국민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총선거에서 압승한 아베 정권이 올해 8월에 발표할 전후 70주년 담화에서 한국을 자극하고, 떨어지는 지지율에 고민하는 박근혜 정권이 강하게 반발하면 한일 관계는 어떻게 될까. 정권 차원에서 벗어나 이제 한일 민간인들이 10년, 20년 후 한일 관계의 모습을 검토해야만 한다.
이미 존재하는 경제적 상호 의존을 포함해 한국과 일본은 많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공통 과제를 극복하기 위한 미래전략도 분명 공유할 수 있다.
오코노기 마사오 동서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