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2월의 주제는 ‘약속’]<25>아이에게 신뢰감을 주세요
조금 뒤 한 중년 여성이 빨간불에도 태평하게 길을 건넜다. “왜 저 아줌마는 빨간불인데도 건너가느냐”고 묻는 아들에게 조 씨는 “저렇게 신호를 어기는 건 나쁜 행동”이라고 타일렀다. 그러자 아이는 다른 남성이 또 빨간불에 길을 건너는 것을 보고 “엄마, 저기 나쁜 사람”이라고 소리쳤다. 무안해진 조 씨는 아이 입을 막고 황급히 자리를 떠나야 했다.
건널목 보행 수칙은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사회적 약속이다. 유치원에서는 “빨간불 안 돼요. 노란불도 안 돼요. 파란불로 바뀌면 길을 건너요∼”라는 노래에 맞춰 안전교육을 받는다. 그런 아이들에게 신호를 어기는 어른들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선의로 한 ‘하얀 거짓말’도 조심해야 한다. 직장인 윤정호 씨(34)는 다섯 살 아들에게 더이상 “주사는 아프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난해 예방접종 주사를 맞고 온 아들이 “아빠는 거짓말쟁이”라며 토라져 일주일 동안 입을 닫았기 때문이다. 윤 씨는 아동보육 전문가에게 “아이에게는 ‘주사는 조금 아프지만 더 튼튼해지기 위해 참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라”는 조언을 듣고 실행에 옮겼다. 그러자 아이가 마음을 열었다. “주사 맞을 때 곁에서 지켜줄게”라는 약속에 아들은 다시 아빠를 믿고 의지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빨리 갔다 올게.” 서영숙 숙명여대 가정아동복지학부 교수는 당장 이 표현부터 고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빨리’에 대한 부모와 아이의 판단은 다르다. 아이는 “엄마는 빨리 온다고 했지만 3∼4시간이 지나야 오는 사람”이라는 불신이 생길 수 있다. 작은 거짓말은 습관이 돼 쉽게 고치기도 힘들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인간의 발달단계를 8단계로 구분하며 첫 번째로 ‘신뢰’를 꼽았다. 에릭슨은 “아이가 세상과 신뢰를 형성하는 시기는 2세 이전이며 부모의 일관성 없는 태도는 불신의 싹을 틔운다”고 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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