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美中과 생명공학 합작회사 설립하는 황우석 박사
황우석 박사는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한국, 미국, 중국의 과학자들이 기꺼이 힘을 합치게 된 배경에는 동물연구를 토대로한인간난치병연구에기여하자는대의명분이가장크게작용했다”고전했다.원대연 기자yeon72@donga.com
《 7일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서 만난 황우석 박사(63)는 전날 중국 베이징에서 막 귀국한 직후였다. 그를 만나 이번 한미중 3국 합작회사 설립에 관한 배경을 들었다. 황 박사는 “중국과의 협업은 매우 오래 전부터 진행되었던 일”이라고 운을 뗐다. “2006년 5월 서울대에서 파면되고 검찰에 기소된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전부터 알고 지내던 국책연구소인 중국과학원과 베이징대에서 일하는 생명공학계의 대표과학자 5명이 위로 방문을 와줬다. 중국 내에서조차 서로 만나기 힘들 정도로 바쁜 사람들이었는데 나를 위로하기 위해 2박 3일 동안 머물다 갔다. 내 제자들까지 두루 만나면서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해줬다. 당시 나는 자괴감과 자책감에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국(異國)의 학자들로부터 진심 어린 위로를 받으니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
○전방위 연구 제안을 했던 중국
“중국과의 연구는 그 이전부터 데이터와 정보 공유 형태로 이뤄지고 있었다. 세미나도 서울과 베이징을 오가며 격년으로 진행했었다. 구체적인 연구 제의가 온 것은 2008년부터였다.”
중국의 제안은 전 방위에 걸친 것이었다고 했다. 산둥(山東) 성 성장(省長)과 웨이하이(威海) 시 시장은 황 박사에게 “연구에 필요한 돈과 시설을 모두 제공할 테니 아예 연구소를 웨이하이 시로 옮기는 게 어떻겠느냐”고도 했고 랴오닝(遼寧) 성도 성 안에 ‘의학 신기술 특별구’를 만들고 싶다며 계획을 주도해 달라고 요청했었다고 한다. 황 박사의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곳이 보야라이프그룹이었다. 쉬샤오춘 회장은 그동안 우리 연구진과 이미 10여 차례 상호 교환 방문을 통해 서로 신뢰가 두터웠다. 최근 들어서는 줄기세포 연구로까지 영역을 확대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낸 상태였다.”
황 박사는 이미 보야라이프그룹과 중국의 상징적 견종(犬種)인 사자견을 4호까지 탄생시키면서 동물복제의 모든 과정을 협업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웨이하이 시에 보야라이프그룹과 공동으로 ‘보야-수암 합작회사(Boyalife-Hbion Joint Venture)’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또 중국 공안부와는 특수경찰견 복제 생산을 위한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황 박사는 “올해부터는 최고급 육우(肉牛) 복제 사업에도 착수할 예정”이라고 했다.
“동물복제 연구에서는 중국과의 협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줄기세포 협업은 주저되는 측면이 많았다. 한국에서 내가 처한 특수한(?) 상황도 있고 또 중국이 아무리 ‘돈 걱정 하지 마라,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 하더라도 중국과의 합작만으로는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가을 한국을 방문한 미국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박사가 뜻밖에 동물연구를 기반으로 한 유전병 치료 등 공동 연구를 제안해 와 깜짝 놀랐다.”
지난달 13일 제주에서 열린 협약식 모습. 왼쪽부터 미국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박사, 보야라이프그룹 쉬샤오춘 회장, 황우석 박사, 경상대 노규진 교수. 수암생명공학연구원 제공
이 대목에서 기자가 “미탈리포프 박사가 왜 황 박사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했다고 보느냐”고 묻자 황 박사는 “그와 나는 일종의 애증 관계에 있었다”(웃음)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가 1번 줄기세포(NT-1)를 만든 지 꼭 10년 만인 2013년 내가 했던 똑같은 체세포핵이식 방식으로 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 물론 그 전에도 학회라든지 공식 행사에서 만난 적이 있었지만 먼발치에서 서로 눈인사만 하던 사이였다. 그런 그가 나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계기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미국 정부가 NT-1에 대한 특허(2014년 2월)를 줄 것이라는 전망이 새어 나올 때였다. 그즈음 미탈리포프 박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 내 미디어를 통해 ‘황 박사에게 특허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계속 비판했었다. 하지만 결국 특허가 나오자 입장이 바뀐 것 같았다.”
미탈리포프 박사와 황 박사 간에 다리 역할을 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미탈리포프 연구진에 포함된 경상대 출신 한국인 연구자들이었다. 미탈리포프 박사는 한국인 제자들의 지도교수인 경상대 노규진 교수를 통해 황 박사를 만나고 싶다고 했고 지난해 10월 직접 수암연구원을 방문해 특강까지 했다.
○유전병 치료 간절히 원했던 중동의 국왕
사실 모계 유전병 연구는 황 박사가 늘 도전하고 싶은 분야였다. 거기에는 그가 겪은 특별한 경험도 있었다고 한다.
“작년에 한 산유국 국왕의 친동생이 개인적으로 연구실까지 찾아와서 왕실 내의 깊은 고민을 말하고 간 적이 있다. 내용인즉슨 왕실 내 근친결혼 때문에 유전적 질환 문제가 많이 생긴다는 거였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청소년기에 갑자기 발병하는 경우도 많아 여간 고민이 아니라고 했다. 그 국왕은 ‘황 박사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만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낼 것이고 시설이 필요하다면 그것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하고 떠났다. 내가 모계 유전질환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황 박사는 이 대목에서 잠시 말을 끊더니 다시 이었다.
“모계 유전질환은 대부분 난자의 세포질 내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통해 유전된다고 알려져 있다. 며칠 전 영국 하원이 역사적 표결을 통해 여성의 유전적 결함이 아기에게 유전될 수 있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미토콘드리아 치환요법’을 합법화했는데 바로 그 때문이다. 일부 종교계와 미디어에서는 영국의 결정을 두고 ‘세 부모 체외수정’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는 매우 과장된 표현이다. 유전자의 대부분은 핵에 몰려 있기 때문에 모체의 핵만 온전히 지니고 있으면 부모 유전자 대부분을 물려받기 때문이다. 마치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받았다고 해서 다른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번에 3국 합작회사 설립을 주도했다고 들었는데 왜 한국에 사무실과 연구시설을 세우지 않았나.
황 박사가 갑자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 내 업보라는 점에서 드릴 말씀은 없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이른바 ‘황우석 트라우마’에 갇혀 줄기세포 연구를 한 걸음도 진전시키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는 난자 사용에 관한 매우 엄격한 법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 한몫을 했다. 미국 영국은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시험관 수정 시술을 시도하고 남은 난자를 연구 목적으로 사용하는 에그 셰어링(Egg Sharing·난자공유제도)을 실시하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금지되어 있다.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냉동 난자 말고는 신선한 난자를 사용할 수 없다 보니 연구에 진척을 볼 수가 없었다. 동물 줄기세포 연구를 인간 연구로 발전시키는 데 근본적인 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떻든 이번 합작으로 기술이 유출되는 것 아닌가.
“가장 우려한 것이 그 대목이었다. 내가 평생 꿈꾸었던 신산업 및 신성장동력의 핵심 기술과 산업을 우리가 아닌 다른 나라로 가져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60을 훌쩍 넘긴 상황에서 앞으로 언제까지 국내 상황이 바뀌기만을 기다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합작은 기술 유출이라기보다는 기술 공유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번에 3국 연구자들을 하나로 묶은 동력은 지구촌의 난치병을 고쳐 보자는 대의명분이었다.”
○난치병 치료에 힘을 합치자
그러면서 그는 미탈리포프 박사와 제주 바닷가를 거닐면서 나누었던 대화가 자신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고 했다.
“알다시피 미탈리포프도 ‘셀(cell)’지에 게재된 논문 사진에 번호를 잘못 매기는 ‘미스 라벨링’으로 논문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지 않았나. 그는 미국 내에서 시비가 일었을 때 자신이 카자흐스탄이라는 주변국 출신으로 천신만고 끝에 이룬 아메리칸 드림은 물론이고 학자로서의 생명도 끝나는구나 하고 절망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를 ‘사기꾼’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웃음) 나에 대한 모든 기사와 자료를 찾아 읽은 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세상 그 어느 연구 책임자도 자기 논문에 하자가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발표하는 바보는 없을 것이고 황 박사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과감히 자기 잘못으로 인정하는 대목에서 동병상련과 존경의 마음을 동시에 가졌다는 것이었다. 사실 미국 문화는 섣불리 잘못을 인정하면 모든 법적 도덕적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탈리포프 박사는 재빨리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고 했고 이후 미국 학계가 이를 받아들여 재연 실험 기회를 주었다. 여기에 성공하게 되면서 모든 게 클리어(clear) 됐다. 그와 진심으로 나눈 대화는 공동 연구의 앞날에 큰 희망을 주었다.”
―세계적 과학학술지 ‘네이처’가 지난해 세계 과학계 10대 뉴스를 선정하면서 네 번째 뉴스로 ‘황우석의 귀환’을 꼽았다. 이번 합작을 귀환이라고 봐도 되나.
“당치 않다. 단지 연구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지난날의 과오를 속죄하며 다국적 연구팀을 통해 반드시 성과를 내겠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